엎치락뒤치락 후 또 인정된 국정원 대선 개입…대법서 결론

입력 2017-08-30 17:16
수정 2017-08-30 17:24
엎치락뒤치락 후 또 인정된 국정원 대선 개입…대법서 결론

1심 무죄 → 2심 유죄 → 대법 "핵심 증거들에 문제" → 파기환송심서 유죄

파기환송심 "전례 없는 범행"…원세훈 '선거법 위반' 심급마다 판단 엇갈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법원이 30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임 기간에 국정원 직원들이 벌인 정치 관련 '댓글 활동'을 선거 개입으로 인정하며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1심과 대법원 파기환송 전 2심, 직접 결론을 선고하지 않고 고법으로 돌려보낸 대법원의 선고(파기환송), 파기환송 후 2심(파기환송심)의 판단에는 다소 간의 차이점이 있다.

우선 이번 판결은 파기환송 전 2심인 2015년 2월 판결과 '모두 유죄' 결론은 같다. 다만, 구체적인 혐의 사실 가운데 인정된 범위는 꽤 다르다. 더 무거운 혐의인 선거법 위반을 무죄로 보고 '국정원법 위반만 무죄'로 판단 1심과 비교하면 결론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사이버 심리전단을 통해 정치 활동에 관여하고, 국정원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2012년 대선 등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국정원법 위반과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1심 재판부는 2014년 9월 선고 당시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결론짓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문제가 된 국정원의 정치 관련 댓글·트윗 글이 정치 개입에는 해당하지만,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선거 개입으로는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원 전 원장이 대선 당시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고,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트윗이나 리트윗 건수가 뚜렷이 줄어든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2심에서 뒤집혔다.

2심은 검찰이 제출한 국정원 직원들의 트윗·리트윗 글을 1심보다 폭넓게 인정하면서 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3년의 실형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 이후에 선거 관련 글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점 등을 선거 개입 인정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선거법 위반을 유죄로 인정한 2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심이 유죄 판단의 핵심 증거로 삼은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 첨부 파일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무더기 증거'가 나온 '425지논' 파일과 '씨큐리티' 파일은 증거로 쓸 수 있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를 판단 증거로 사용하려면 사실관계를 다시 따져보라는 취지였다. 다만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유·무죄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대법원이 문제 삼은 직원 김모씨의 이메일 첨부 파일 '425지논'과 '씨큐리티' 파일에는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이버 활동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 269개와 비밀번호,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름 앞 두 글자를 적은 명단과 활동 내용 등이 담겼다.

대법원은 이 파일이 형사소송법상 '전문(傳聞)증거'라는 이유로 어떤 사실에 관한 내용이 위·변조나 오염 없이 진실하게 작성됐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전문증거란 체험자의 직접 진술이 아닌 간접 증거를 말하며, 증거로서 가치인 증거능력이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형소법은 전문증거의 경우 작성자가 직접 법정에 나와 자신이 작성한 것임을 인정해야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국정원 직원 김씨는 1심 법정에서 이 파일이 자신이 작성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대법원이 부인한 해당 파일의 증거능력은 부인했다. 혐의 인정과 법적 판단은 엄격한 증거법칙과 철저한 증명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형사재판 원칙에 따른 것이다.

대신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트윗 계정을 1심(175개)보다 많은 391개로 인정하며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 범위를 폭넓게 인정했다.

재판부는 직원들이 이들 계정을 이용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글을 올린 건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정치관여 행위라고 봤다.

나아가 2012년 8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확정된 이후 올린 글들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선거 국면에서 특정 정당·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글을 올리는 건 선거운동으로 충분히 인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때의 글들은 당시 여당인 박근혜 후보를 노골적으로 옹호·지지하거나 야당 후보였던 문재인, 이정희, 안철수 후보를 반대·비방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여당 후보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 등의 국정원법·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국가기관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정치와 선거에 관여한 전례 없는 범행"이라고 질타했다.

다만 원 전 원장 측은 선고 직후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혀 한 번 더 법리 판단을 받게 됐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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