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설경구 "기억과 시간, 인간의 악마성에 관한 작품"

입력 2017-08-30 13:25
수정 2017-08-30 15:07
'살인자의…' 설경구 "기억과 시간, 인간의 악마성에 관한 작품"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설경구(49)는 비쩍 말라 있다. 얼굴도 마른 장작처럼 푸석푸석하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 병수 역할을 위해 체중을 감량한 탓이다. 굳이 노인 분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얼굴과 목, 손등까지 쭈글쭈글한 주름이 생겼다.

3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병수가 어떤 얼굴을 지녔을까 고민하다 기름기를 쫙 빼고 건조한 얼굴을 가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평소 80㎏ 가까이 나가던 몸무게를 웨이트 트레이닝도 없이 68㎏까지 뺐다고 한다.

그는 과거 '역도산' 때는 5개월 만에 28㎏을 찌워 100㎏ 가까이 늘렸다가, '공공의 적2'의 검사 역할을 위해 한 달 만에 70㎏대로 살을 빼는 등 작품마다 고무줄처럼 체중을 조절해왔다. 설경구는 "살 빼는 요령이 생겼다"면서 "살 빠지는 것을 보면 희열이 느껴진다"며 웃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설경구의 배우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된 영화다. 연기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이 작품을 만났다고 했다.

"과거 몇 년 동안은 계속 해왔던 대로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이번에는 살을 찌워? 아니면 빼?'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했죠.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캐릭터였고, 병수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너무 궁금했죠. 그러다 보니 많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치열한 고민의 결과는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돼 그의 필모그래피에 한 획을 그을 만한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다.

극 중 병수는 '세상의 나쁜 것들을 청소하는' 연쇄살인범이었다가 어느 날 살인을 멈춘 인물. 17년 동안 동물병원 원장으로 본능을 감추며 살아가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그런 그의 주변에 살인자의 기운을 지닌 태주(김남길)가 나타나고, 하나뿐인 딸을 태주로부터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영화는 병수의 상상과 망상,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전개된다.

설경구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기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없어서 과거 TV에서 본 다큐멘터리 등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작가 김영하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원작의 기본 뼈대는 가져오되, 결말과 캐릭터 등에 변화를 줬다.

"원작을 단숨에 읽었다"는 설경구는 "영화 속 병수와 태주의 대결 구도, 액션 장면 등은 원작과 다르다. 태주의 살인에도 동기가 부여돼있다"면서 "영화는 재창작 작업이기에 소설과 영화를 보는 맛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영화는 기억과 시간, 삶과 죽음, 그리고 개개인이 갖고 있는 악마성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고 소개했다.

데뷔 25년 차인 설경구는 영화 '박하사탕' (1999), '오아시스'(2002)를 비롯해 2000년대 '공공의 적' 시리즈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최근 몇 년간 출연한 작품들이 모두 흥행에 실패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칸영화제 초청작인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과 '살인자의 기억법'을 연달아 선보이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불한당' 이후에는 열혈팬층인 '불한당원'들도 생겨났다.

설경구는 '불한당'을 찍으면서 "(변성현 감독과 임시완 등) 젊은 친구들에게서 치열함을 배웠고, 그들이 저를 긴장시켰다"면서 "앞으로는 더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최근 김지훈 감독의 신작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촬영을 끝냈고, 한석규와 함께 출연하는 영화 '우상'(이수진 감독) 촬영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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