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욕망이 깨어나는 순간…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입력 2017-08-30 11:20
수정 2017-08-30 15:05
억눌린 욕망이 깨어나는 순간…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 미국 남부의 한 인적 드문 마을. 버섯을 따러 나간 소녀 에이미는 다리를 다친 북부군 장교 존을 발견한다. 에이미는 그를 부축해 자신의 거처인 여자 신학교로 데려간다.

이 기숙 학교에는 원장인 마사(니콜 키드먼 분)와 교사 에드워드 모로우(커스틴 던스트 분)를 비롯해 7명의 여자만 살고 있다.

전쟁의 포화 속에 고립된 채 단조롭고 억눌린 생활을 해오던 이 공간에 남성이 들어오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7명의 여자들 내면에 억눌려왔던 욕망이 하나둘 깨어나고, 이 욕망이 서로 충돌하면서 평화롭던 삶에 균열이 일어난다.

내달 7일 개봉하는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은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소피아 코폴라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원작은 토마스 P. 컬리넌이 1966년 발표한 소설로, 이미 1971년 돈 시겔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로 만든 바 있다.

여성 감독인 소피아 코폴라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남성 군인의 시선으로 전개됐던 1971년작과 달리 여성의 시선으로 극을 펼치면서 그들 속에 내재된 욕망을 한층 우아하고 절제된 톤으로 묘사한다.





존이 신학교에 들어온 순간 7명의 여성의 내면에서는 존을 향한 두려움과 호기심, 동정심, 욕망, 질투심 등 갖가지 감정이 피어오른다. 이는 답답하고 단조롭던 신학교 생활에 묘한 긴장감과 함께 활기를 부여한다.

존이 머무는 방을 몰래 기웃거리며 들여다보고, 그와의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자 원장부터 막내까지 다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평소 입지 않던 드레스를 꺼내 한껏 치장한다. 존을 향한 이들의 욕망은 때로는 관객을 킥킥거리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은밀하고 신비롭게, 때로는 도발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욕망이 얽히고 충돌하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욕망의 충돌이 빚어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등장인물들 내면의 폭력적 본성이 드러나고 선의로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등장인물 속에 내재된 욕망을 노골적인 묘사 없이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으로 그려낸 코폴라 감독의 연출이 돋보인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어두워지는 배경은 점점 스릴러 성격을 띠어가는 극의 긴장감을 높이고, 어둠 속에 소품으로 활용된 촛불은 인물 간의 미묘한 심리전을 부각시킨다.

19세기를 재현한 의상과 세트는 절제된 연출과 함께 극의 고전적 품격을 높이고, 요즘 영화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1.66대 1의 화면비율도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억눌려온 욕망의 게임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배우들의 연기도 코폴라 감독의 연출을 받쳐준다.

원칙과 욕망 사이를 오가며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원장 역의 니콜 키드먼, 순수와 욕망을 넘나드는 에드위나 역의 커스틴 던스트, 소녀와 여인의 경계에서 도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알리시아 역의 엘르 패닝, 친절함과 광기를 넘나드는 존 역의 콜린 파렐 등이 절제된 연기 속에 서로 맞부딪히며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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