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음주 운전 중국인, '불법체류 들킬까' 수갑 차고 도주

입력 2017-08-30 10:32
무면허 음주 운전 중국인, '불법체류 들킬까' 수갑 차고 도주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29일 오후 11시 50분 전남 나주시 남평읍 시장 옆 단독 주택을 교통경찰 17명이 둘러쌌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17명의 경찰관 중 가장 체격이 건장한 1명이 주택 안으로 신속하게 진입했다.

얼마후 집안에서는 "여기에 있다"는 고함이 울려 퍼졌다.

소리를 듣고 집을 둘러싼 경찰관들은 집안으로 한꺼번에 들어갔지만, 집 안에 숨어있던 범인은 방안 쪽문을 통해 밖으로 도망가 1층 단독 주택 옥상으로 올라갔다.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지 못한 범인은 뒤쫓아온 경찰관 10여명에게 둘러싸이자, 순순히 고개를 떨구고 다시 수갑을 찼다.

지난 29일 낮 12시 5분께 광주 서부경찰서 별관 교통과 사무실에서 중국인 A(34)씨가 도망갔다.

A씨는 당일 자정께 광주 서구 상무지구 도심 도로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16% 상태로 무면허 음주하고 운전하다 적발됐다.

만취한 A씨를 유치장에서 하룻밤 재운 경찰은 날이 밝자 그를 유치장에서 불러내 사무실 의자에 앉혀 조사하던 중이었다.

지난 1월에 수갑을 채우지 않은 피의자 도주한 사건을 겪은 경찰은 A씨의 팔에는 수갑을 잊지 않고 채워 의자에 묶어뒀다.

그러나 A씨는 지문 감식을 통한 신원 조사를 위해 한쪽 팔의 수갑을 잠시 풀어준 틈을 타 수갑이 걸린 의자 걸쇠를 부수고, 한쪽 팔에 수갑을 대롱대롱 매단 채 그대로 도망갔다.

신원 조회를 위해 잠시 등을 돌리고 있던 경찰관이 뒤늦게 쫓아갔지만, A씨는 이미 멀리 도주한 뒤였다.

교통경찰을 돕기 위해 나선 형사과 경찰은 A씨가 나주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동료의 집에 은신했을 것으로 추정한 경찰은 A씨가 숨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나주의 한 주택을 포위했다.

17명이 되는 경찰이 동원됐지만, 키 175㎝에 오랫동안 건설현장에서 일해 다부진 체격의 A씨가 반항할 것으로 우려해 경찰은 가장 체격 조건이 좋은 경찰은 주택 안으로 투입했다.

주택 안에서는 A씨가 침대 매트리스를 뒤집어쓰고 발만 밖으로 내놓은 채 마치 '눈만 가린 꿩'처럼 숨어있었다.

경찰은 곧장 밖으로 소릴 질렀고, 옥상까지 올라가 반항한 A씨를 도주 12시간여 만에 다시 붙잡았다.



2012년 중국에서 입국한 A씨는 2013년 출국해야 했지만, 최근까지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서에서 도주한 것도 불법체류 사실이 들통나 쫓겨나갈 것이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A씨는 오랜 한국 생활로 어느 정도 한국말을 할 줄 알았지만, 경찰서에서는 한마디 할 수 없는 척하며 통역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은 A씨가 한쪽 팔에 수갑을 차고 도주했으나, 검거 당시 수갑이 풀려 있던 점을 토대로 수갑을 잘라주고 은신처를 제공한 조력자가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 A씨에 대해 무면허 음주운전, 출입국 관리법(불법체류) 위반, 공용물(수갑) 훼손, 도주 등의 혐의를 모두 적용할 방침이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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