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마르코스 가족, 두테르테 '환심사기'…"금괴 내놓겠다"
부정축재 재산 일부 반납 의사…여론 달래기·생색내기 의혹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일가가 부정축재 재산 일부를 국가에 돌려주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동안 자발적인 부정축재 재산 환수를 거부하던 마르코스 일가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화답하는 모양새다.
반납 재산 규모가 작은 것으로 알려져 생색내기라는 비판과 함께 두테르테 대통령과 마르코스 일가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30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공무원 임명 행사에서 마르코스 가족들이 금괴 몇 개를 포함해 재산 일부를 반환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마르코스 일가는 정부 재정 적자의 완화 지원 등을 거론하며 이런 입장을 타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재산 반납 규모는 크지 않고 (반납 대상에) 금괴 저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면서도 마르코스 일가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정부 대표로 전 대법관을 임명해 재산 환수 협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마르코스가 1965년 대통령에 당선돼 1972년 계엄령을 선포, 장기 집권을 하다가 1986년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으로 사퇴할 때까지 그와 가족들이 부정축재한 재산은 100억 달러(약 11조2천억 원)로 추정된다. 이중 약 34억 달러(3조8천억 원)만 지금까지 회수됐다.
야권의 안토니오 티니오 하원의원은 "재산 반환이 모든 약탈재산을 말하는 것이냐, 반환금액을 협상할 수 있는 것이냐"며 "마르코스 일가가 (부정축재에) 형사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시사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톰 빌라린 하원의원은 "마르코스 일가가 부정축재 재산을 조건 없이 반환하면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선전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최근 마약단속 경찰의 17세 고교생 사살 등 '마약과의 유혈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국민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작년 11월 마르코스 시신을 고향 마을에서 국립 '영웅묘지'로 이장하도록 해 마르코스 독재 치하 피해자들과 인권단체, 야당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르코스 일가의 부정축재 재산 환수를 위한 대통령 직속 바른정부위원회(PCGG)를 폐지하고 대신 반독직 기구 설치를 추진하고 있어 마르코스 독재 유산의 청산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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