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소리없는 저격수 '당뇨망막병증'…"실명 막아야"
당뇨병 초기부터 정기 안과 검사, 동반 전신질환 관리 필수
(서울=연합뉴스) 이주용 서울아산병원 안과 교수 = #. 올해 60세가 된 정영구(가명)씨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최근 퇴직했다. 집안 대대로 당뇨병 병력이 있던 정씨는 10년 전인 50세에 처음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동안 학교 수업과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당뇨병 관리에 소홀했던 것은 물론 병원도 자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정씨는 작년부터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느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노안이 온 것으로 생각해 돋보기도 맞춰봤지만, 눈앞에 계속 까만 점이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어 병원을 찾았다. 정밀검진 결과 당뇨병 합병증인 '당뇨망막병증'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시력을 잃을 뻔했지만, 다행히 주사치료와 레이저 시술로 병은 더 진행되지 않았다. 정씨는 이제 학교도 퇴직한 만큼 당뇨병과 합병증 관리에 더욱 주의할 생각이다.
식생활습관의 변화 및 고령화 등의 이유로 국내 당뇨병 환자가 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인구의 당뇨병 유병률은 13.7%다. 대략 7명 중 한 명꼴로 당뇨병 환자인 셈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인구에서는 유병률이 30% 이상인 것으로 밝혀져 고령층 당뇨병의 심각성을 반영했다.
당뇨병 전 단계로 일컬어지는 공복혈당장애 유병률도 24.8%로, 성인 4명 중 1명이 당뇨병 발생 '초고위험군'에 해당했다. 공복혈당장애는 식후 혈당이 100∼125㎎/㎗인 경우로, 당뇨병 발생 확률이 정상혈당을 가진 사람들보다 1.5배 이상 높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돼 혈당이 급속하게 높아지는 것을 조절한다. 반면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분비가 부족하거나 혹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혈중 포도당의 농도가 만성적으로 높은 상태에 있다. 이런 고혈당을 치료하지 않으면 급성 혹은 만성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혈액 속에 당이 과다하게 높으면 지방질과 여러 세포 등이 혈관 벽에 침착돼 혈관이 조금씩 좁아지다가 나중엔 아예 막히게 된다. 이 과정은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지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당뇨병은 '소리 없는 살인자'로도 불린다. 혈관 벽이 막히는 현상은 우리 몸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데, 특히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는 부위는 눈, 콩팥, 그리고 심장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발이다.
그중에서도 눈은 당뇨병에 가장 취약하다. 당뇨병에 의해 파괴되기 쉬운 미세혈관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엔 증세가 없다가 시세포가 밀집된 황반부까지 침범하면 시력저하가 시작되고 결국 실명에 이른다. 이게 바로 '당뇨병성 망막병증'이다.
당뇨망막병증은 당뇨병 때문에 우리 눈의 망막 혈관이 손상되고 이로 인한 망막 출혈, 부종 등으로 시력저하가 초래될 수 있는 병적인 상태를 말한다. 이런 당뇨망막병증은 몸속에 고혈당 상태가 지속함으로써 다른 신체 장기의 혈관이 손상되는 것처럼, 망막 모세혈관의 손상으로 발생한다.
모세혈관이 손상돼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부위에서는 망막 세포에 더 많은 산소와 영양소를 전달하기 위해 '신생혈관 형성인자'라고 하는 물질이 만들어 진다. 이런 물질의 영향으로 망막 내 혈관들은 투과성이 증가해 주변 조직으로 혈액 성분이 누출되고 이는 결국 시력장애로 이어진다.
당뇨망막병증 발생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당뇨병의 유병 기간이다. 즉, 당뇨병을 진단받은 시기가 길어지거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당뇨망막병증의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제1형 당뇨병 환자의 99%, 제2형 환자의 60%가 진단 20년 후에 당뇨망막병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또 당뇨망막병증에 의한 실명률은 제1형이 86%, 제2형이 33%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당뇨병 진단 초기부터 정기적인 검사와 함께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당뇨망막병증의 발생 및 진행을 늦추고, 실명을 예방할 수 있다.
당뇨망막병증 치료의 기본은 바로 혈당 조절이다. 철저한 혈당 관리를 통해 당뇨망막병증의 시작을 늦출 수 있다.
또 당뇨병 환자에게 동반하기 쉬운 고혈압, 신장 질환, 고지혈증 등의 적절한 관리도 당뇨망막병증의 관리에 중요하다. 이런 내과적인 치료 이외에 당뇨망막병증을 진단받으면 심한 정도에 따라 레이저 치료, 안구 내 주사치료, 수술치료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해 볼 수 있다.
가벼운 당뇨망막병증의 경우에는 전신 치료를 시행하면서 정기적으로 경과 관찰을 한다. 하지만 중증 당뇨망막병증의 경우 진행을 막기 위해 '범망막 광응고 레이저 치료술'을 시행한다. 이는 황반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를 레이저로 치료하는 방식이다.
중심 시력저하를 초래하는 황반부종이 발생한 경우에는 안구 내 주사치료 및 국소 레이저치료 등을 시행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유리체출혈, 견인망막박리 등으로 시력저하가 진행되는 경우에는 수술 치료를 해야 한다.
물론 당뇨망막병증은 한 번 발생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최근 신생혈관 억제 유전자 치료 등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 기초단계다.
따라서 당뇨병 진단 초기에 철저한 혈당 관리와 함께 동반하는 전신 질환을 잘 조절함으로써 당뇨망박병증 발생과 진행을 늦추는 게 최선이다. 그러려면 자각 증상과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안과 검사를 받아야 한다. 또 적절한 시기에 안과 치료를 시행해야 오랫동안 좋은 시력을 유지할 수 있다.
◇ 이주용 교수는 서울의대 학사 및 울산의대 석·박사를 마치고 서울아산병원 안과에서 망막질환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 특히 당뇨병 때문에 망막에 이상이 온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서울아산병원 당뇨병센터 내에 당뇨망막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망막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 교수는 최근 새로운 망막변성 치료법과 관련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진행성 황반변성 환자에 대한 줄기세포를 임상 연구 및 신생혈관 억제 유전자 치료를 통한 망막혈관병증 치료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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