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양성원 "바흐 연주할 땐 발가벗은 느낌"
8∼10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리사이틀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첼리스트 양성원(50)은 7살에 첼로에 입문해 올해 지천명(知天命)이 됐다.
연세대 교수이자 영국 로열아카데미오브뮤직 초빙교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첼로 활을 잡은 43년간 연주자라는 정체성을 놓은 적은 없다.
그런 그가 '첼리스트들의 구약성서'로 통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총 6곡)을 새로 녹음해 최근 음반을 냈다. 2005년 음반(EMI) 이후 12년 만에 내놓은 양성원의 바흐는 어떤 모습일까.
29일 중구 정동에서 만난 양성원은 "사실 바흐를 연주하는 건 공포"라고 털어놨다.
"바흐를 연주한다는 건 발가벗는 것과 똑같아요. 너무나도 깨끗한 거울 앞에서 자신을 직선적으로 대면하는 느낌이죠. 바흐는 어느 곡보다도 투명하기 때문에 연주자의 음악적 이해도를 단숨에 꿰뚫어보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콩쿠르에서 바흐를 요구하죠. 많은 사람이 바흐를 두려워하지만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20대 때는 솔직히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을 모두 할 자신이 없었다"며 "이젠 바흐를 들으면 인류에게 전해 내려온 문화유산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4∼5년 전부터 전곡을 연주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새 앨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유니버설뮤직)은 19세에 지어진 파리의 노트르담 봉스쿠르 성당에서 녹음됐다.
양성원은 "그날, 그 장소의 소리를 고스란히 담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믹싱은 눈곱만큼도 없다"며 "성당의 잡음, 나무가 움직이는 소리, 돌이 튕겨져 벽에 부딪히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남기는 게 좋았다"고 회고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 양해엽 선생의 평가가 어땠느냐는 질문에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릴 때 아버지는 가장 믿을만하면서도 두려운 비평가셨어요. 그런데 작년에 미수(米壽·88) 잔치를 했잖아요. 요즘은 무조건 좋다고 하세요. 또한, 제가 추구하는 음악을 제일 잘 아는 건 결혼한 지 20년 된 아내(바이올리니스트 김은식)죠. 아내는 한없이 제 음악을 들어주고 질문에 답을 줍니다."
평생의 숙제인 연습이 고통스럽진 않았을까. 양성원은 "음표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묻더군요. 아빠는 온종일 첼로 앞에 앉아있는 게 외롭지 않으냐고. 솔직히 충격적인 질문이었어요.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지 알았다면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겠죠.(웃음) 그러나 인간이 청각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음색이 점점 다양해지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데서 축복을 느낍니다."
양성원은 10월까지 대구, 부산, 인천, 여수, 서울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주하는 리사이틀을 연다. 중간중간 프랑스와 일본에서의 공연도 있다. 인터미션 시간 40분을 제외하고 순수한 연주 시간만 2시간 40분에 달한다.
그는 일반인이 바흐를 쉽게 들을 팁을 달라는 요청에 "편하게 접근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디지털화된 세상이 편한 것만 찾도록 부추기는 것 같아요. 일단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 게 절대 편안한 일이 아니죠. 6곡을 한 번에 듣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압니다. 그러나 몇 세기의 변화를 이겨낸 이 불멸의 명곡은 듣는 순간 우리 근육과 뼈대, 삶에 스며들 것이고 그 느낌은 10년 뒤에도 남아 삶을 변화시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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