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동참 요구에 고심한 韓, '거래주의 촉구'로 절충

입력 2017-08-28 18:21
수정 2017-08-28 18:53
美 제재동참 요구에 고심한 韓, '거래주의 촉구'로 절충

한미공조·한중관계 감안 관측…직접 제재 대신 간접 조치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정부가 28일 미국의 대북제재 관련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러시아 기업(중국 7곳·러시아 1곳) 및 개인(중국인 3명·러시아인 4명)과의 거래에 주의할 것을 관보를 통해 공고한 것은 한미 공조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동시에 감안한 '절충'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지원 혐의를 받는 중국·러시아 기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독자제재 성격이 있다. 하지만 해당 기업과 우리 기업 간의 거래를 금지하고 해당 기업의 국내 자산을 동결하는 등의 직접 제재가 아닌 우회적 방식을 택했고, 강도 면에서도 거래 금지가 아닌 거래 주의 촉구 선에 머물렀다.

앞서 미국 정부는 한미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6월 29일 북한의 돈세탁과 불법 금융활동의 통로 역할을 했다며 단둥은행을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하고 다롄 국제해운을 재재 대상에 올렸다. 이어 지난 22일에는 중국 기업 5곳, 러시아 기업 1곳 등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우리 정부가 이들 기업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 사실을 관보를 통해 공개하고 이들과의 거래 주의를 촉구한 것은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는 간접적 조치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 정부 때인 작년 12월, 북한의 제5차 핵실험(작년 9월 9일)에 대한 독자제재 차원에서 미국의 독자제재 명단에 올라있던 단둥훙샹(鴻祥)실업발전(이하 훙샹)을 우리 정부가 정식으로 제재했던 상황과 차이가 있다.

또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일본이 최근 미국과 보조를 맞춰 취한 조치와도 수위 차이가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8일 단둥은행과 다롄국제해운 등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기업들을 자산동결 대상으로 지정함으로써 자국의 정식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단둥은행 등을 독자제재 한 뒤 외교 경로를 통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정부에 '동반 제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가 고심 끝에 직접 제재 대신 제재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간접 조치를 택한 것은 대북 정책과 관련한 한미 공조와 더불어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의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심각하게 악화한 한중관계를 감안할 때 중국 기업을 정식으로 제재할 경우 중국이 우리 기업들을 상대로 한 '사드 보복'의 강도를 더 높일 수 있는 점 등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북핵 해결 과정에서 한중간에 협력해야 할 여지가 큰 점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경우는 내달 6∼7일 문재인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블라디보스토크) 참석을 계기로 러시아와의 경협 강화를 담은 '신 북방정책'을 발표할 계획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이 최근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도발 자제'로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핵 관련 대화 국면 조성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도 우리 정부의 조치 수위 조절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이번 조치는 정부의 고심이 담긴 창의적인 외교로 평가할 측면과 함께 미국과 중·러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겪고 있는 '딜레마'를 재확인시킨 측면이 있어 보인다.

특히 미국이 앞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불법 유무와 관계없이 일괄 제재하는 '세컨더리보이콧'을 정식 단행할 경우 우리 정부의 고민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올들어 미국이 중국 기업들에 대해 취한 독자제재는 북한 문제를 넘어, 무역과 관련한 '중국 때리기'의 성격이 내포돼 있다"며 "그런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동반 제재'를 하기에는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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