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로힝야족 문제 방치하면 폭력·급진화 부를것" 경고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실권자 아웅산 수치의 요청으로 미얀마 종교갈등의 해법을 모색해온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은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 문제를 방치할 경우 급진세력의 확장과 폭력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5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난 전 사무총장은 전날 1년간의 자문단 활동을 마감하는 최종보고서를 수치 자문역에게 제출한 뒤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주도하고 사회 전반이 참여하는 일치된 행동이 당장 이뤄지지 않으면, 폭력과 급진화의 순환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라카인주를 괴롭히는 만성적인 빈곤을 더욱 심화할 것"이라며 "반대로 우리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실행된다면 항구적인 평화와 발전, 법치에 대한 존중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난 전 총장이 주도한 자문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먼저 로힝야족에 대한 시민권 부여 문제를 거론했다.
로힝야족을 비롯한 이슬람계 소수민족의 '무국적'(無國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과 신생아에게 출생증명서를 발급하고 시민권을 부여하라고 권고했다. 특히 보고서는 이 문제가 곪아 터지도록 놔두면 미얀마에 돌이킬 수 없는 위험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위원회는 종교와 인종, 시민권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경제 사회적 혁신을 통해 빈곤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수치 자문역은 성명을 통해 "라카인주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단기적인 해법을 찾기도 어렵다. 문제는 만성적인 저개발에서 비롯됐다"며 "이런 측면에서 위원회가 제시한 장기적 해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위원회 보고서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권단체들은 미얀마 정부가 위원회의 제안 내용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오늘 발표된 보고서는 미얀마 당국이 차별과 인종 분리를 종식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분명한 대응이 없으면 오랜 불만과 부당한 처사, 만성적인 폭력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라카인주 주민은 계속 박탈과 박해 속에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인구의 90%가량이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약 1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불법 이민자로 취급을 받으며 차별과 박해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12년 불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유혈 충돌로 200여 명이 사망한 이후 미얀마 당국은 로힝야족을 수용소에 가두고 기본권마저 제한했다.
또 지난해 방글라데시 국경 인근에서 괴한에 의한 경찰초소 습격사건이 발생하자, 미얀마군은 그 배후로 로힝야족 무장단체를 지목하고 이들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이면서 '인종청소' 논란에 휩싸였다.
실제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군인들의 성폭행, 방화, 고문 등 잔혹 행위를 피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로힝야족 난민은 7만5천 명에 이른다.
그러나 수치가 주도하는 미얀마 정부는 '인종청소' 주장을 부인해왔으며, 유엔이 구성한 국제사회의 조사도 거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라카인주 산악 지대에서 불교계 소수민족 남녀 3쌍이 숨진 채 발견되자, 미얀마군은 또다시 병력을 투입해 범인 소탕에 나섰고 주민들의 국경 이탈도 다시 시작됐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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