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의 선물' 美시카고 파시스트 기념탑 철거요구 시위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미국에서 인종주의 색채를 띠는 역사기념물이 잇따라 철거되고 있는 가운데 83년 전 시카고 도심에 세워진 파시스트 기념탑이 존폐논란에 휩싸였다.
24일(현지시간) 시카고 언론에 따르면 시카고 그랜트파크 인근 발보 드라이브에 서 있는 이탈리아 공군 영웅 이탈로 발보 장군(1896~1940) 기념탑 앞에서 시민운동가 30~50명이 연일 철거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시카고 시가 파시스트 정권을 기리는 석조 조형물의 설치를 허용하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파시스트 기념물은 가라"고 구호를 외쳤다.
고대 로마 신전의 기둥을 현대식 돌 받침대 위에 올린 발보 기념탑은 이탈리아 정치가이자 파시즘 창시자인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가 1934년 시카고에 선물했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공군력의 상징이던 발보 장군이 1933년 24기의 군용 항공기를 이끌고 로마에서부터 세계박람회(World's Fair)가 열리고 있던 시카고까지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1주년을 맞아 이 조형물을 시카고에 보냈다. 시카고 시는 기념탑 설치 후 전면 도로명을 7번가에서 '발보 드라이브'로 변경했다.
기념탑 하단에는 "'파시스트 이탈리아'(1922~1943)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파시스트 집권 11년 차에 이뤄진 발보의 비행을 기념하기 위해 시카고 시에 기증했다"는 설명이 새겨져있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시민조직 '응답하라 시카고'(Answer Chicago) 코디네이터 존 비첨은 "발보 기념탑을 철거하고, 도로명을 변경하기 위한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기념물이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의 부활을 부채질한다"며 "인종주의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소리높여 말하지 않을 경우 위협이 계속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솔리니는 스페인 내전(1936~1939)을 계기로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와 가까워지면서 반유대주의 정책을 도입했다.
발보 장군은 무솔리니가 군사력 강화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도록 도왔고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일각에는 "발보는 무솔리니의 오류에 맞섰고, 반유대주의 입법에 반대했다. 또 항공 역사에 의미있는 인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며 기념탑 철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시카고 트리뷴은 전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발보는 무솔리니의 오른팔이었다. 발보 기념탑은 파시스트 기념물일 뿐 아니라 파시즘 기념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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