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 선장이 호주를 발견?"…호주서도 인종주의 역사기념물 갈등
"원주민을 부정하는 거짓말"…쿡 선장 동상 글귀 수정 요구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미국에서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상징이 된 로버트 리 장군 동상과 남부 연합기를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호주에서도 인종주의적 역사기념물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시드니 한복판의 하이드 파크 공원에 세워진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의 동상에 새겨진 글귀다. 쿡 선장은 통상 (유럽인 입장에선) 호주대륙을 처음 발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호주 공영 ABC 방송의 원주민 출신 진행자인 스탠 그랜트는 최근 쿡 선장 동상에 새겨진 "1770년에 이 영토를 발견했다"는 기술은 잘못된 것이라며 호주 역사 바로잡기에 나서줄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그랜트는 "쿡 선장이 우리 이야기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호주를 발견하지는 않았다"며 "이는 원주민들의 자존심을 크게 훼손하는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술대로라면 쿡 선장 이전에 원주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랜트는 또 호주 전역에는 원주민을 강제로 몰아낸 사람들을 위한 기념비가 곳곳에 있으며, 이런 사실이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랜트는 "미국인들은 증오의 기념물들을 철거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것에 눈을 감고 있다"고 강조하고 다만 쿡 선장의 동상이 철거되기보다는 관련 글귀가 교정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그랜드의 언급을 놓고 소셜미디어 등에서 엇갈린 반응이 쏟아지는 가운데 강경 보수 성향의 토니 애벗 전 총리가 이를 야당 공격 소재로 활용하고 나섰다.
애벗 전 총리는 23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주요 야당 노동당의) 빌 쇼튼 대표가 총리가 되면 쿡 선장의 동상은 모두 철거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하이드 파크에 세워진 또 다른 동상으로 논란은 확산했다.
초기 식민지 시절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초대 총독인 래클런 맥쿼리(1762-1824) 동상에 새겨진 글귀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맥쿼리는 호주 사회 형성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동상에는 "그는 완벽한 신사로, 인간적 심성을 가진 기독교인 겸 뛰어난 입법자"라는 글귀가 새겨졌지만, 원주민 사회 등 일각에서는 "처음으로 학살 명령을 내린 사람으로, 어린이 등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도록 지시했다"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논란이 확산하자 이들 동상을 관할하는 시드니 카운슬의 클로버 무어 시장은 글귀의 수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무어 시장은 카운슬 내 원주민자문위원회에 "평등을 증진하고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을 내도록 요청했다"고 24일자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말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백인우월주의자 폭력시위의 후폭풍으로, 백인우월주의 상징으로 꼽히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Confederate) 상징물이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cool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