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포르투갈 과거 주종관계 역전…"포르투갈은 자금세탁기"
석유 붐 앙골라, 국가부도 위기 포르투갈 기업·은행 살려
"앙골라 부 독점한 지배층, 200조원 이상 해외 투자…부패자금 세탁용의심도"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인도가 지난해 과거 식민 종주국이던 영국을 제치고 세계 6위의 경제 대국에 올라섰지만, 역시 식민지와 식민 종주국 사이였던 앙골라와 포르투갈 간의 관계 반전은 이보다 더 극적이다.
1975년 독립 이전까지 수백년 간 포르투갈은 노예무역과 천연자원 채굴을 통해 앙골라를 수탈해 왔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사이에 앙골라는 석유 붐 덕분에 돈 방석에 앉았고, 포르투갈은 수년 전 국가부도 위기를 맞아 외부의 투자가 절실히 필요할 때 앙골라가 한 때는 "유일한 투자자"로서 포르투갈 은행과 기업들을 많이 살리는 관계가 됐다.
석유 붐이 시작된 2002년부터 2015년 사이에 앙골라 기업과 개인의 해외 '투자'액이 1천89억 달러(214조 원)인 데 반해 포르투갈은 1천1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다.
양국의 관계는 그러나 건전하지는 않다. "앙골라에선 포르투갈을 '동전세탁기'라고 부른다"고 뉴욕타임스는 한 포르투갈 정치인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부패한 앙골라 지배층이 돈 세탁용으로 포르투갈의 기업체와 부동산에 거액을 투자하는 현실을 가리킨 것이다. 그래서 "앙골라는 부패의 앞문이고 포르투갈은 뒷문이다"는 말도 나온다.
양자 간 역전된 관계는, 포르투갈이 앙골라 관리들의 부패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에 앙골라 정부가 포르투갈과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서자 포르투갈 외교 장관이 즉각 사과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앙골라를 도와줘야 할 못사는 나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게 됐고, 우리가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살 수 있게 됐다"고 포르투갈의 한 기자는 말했다.
그러나 최근엔 유가가 하락하는 반면 포르투갈의 경제는 회복되고 있어 양자 관계가 긴장되고 유동적인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양국 간 우열관계에 다시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앙골라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후에도 40년 가까이 내전에 시달리다 평화를 되찾은 2002년부터 시작된 석유 붐의 혜택은 앙골라 국민 2천500만 명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38년간 장기집권한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74)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을 비롯한 지배계층이 독점했다.
세계 최악의 불평등 사회에 속하는 앙골라의 노동인구 절반은 하루 3.1 달러(3천500 원) 미만으로 산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 추산 35억 달러의 재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꼽히는 도스 산토스 대통령의 장녀 이사벨(44)은 포르투갈 은행, 언론사, 에너지 회사들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포르투갈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중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이사벨은 이를 바탕으로 할리우드와 유럽의 명사들과 어울리고 최근엔 런던 정경대에서 강연도 하는 등 세계적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앙골라 지배층은 포르투갈 최대의 공기업들을 비롯해 포도농장, 신문사, 프로 스포츠팀 등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을 뿐 아니라 포르투갈 통로를 통해 유럽과 그 바깥으로까지 투자 영역을 넓혀왔다.
이들은 도스 산토스 대통령의 통치가 결국은 끝날 수밖에 없다고 보고 미리 해외로 자산을 빼돌렸으며, 포르투갈의 정치·경제 지배층이 이를 적극 도운 셈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이사벨은 자신을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2013년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선 어릴 때부터 사업 감각이 있어서 6살 때 이미 달걀을 팔았었다고 주장, 앙골라에서 조소와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다.
마르콜리노 모코 전 앙골라 총리는 이사벨의 재산을 스스로 일구는 게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를 웃기는 건 가능하다"며 "그의 부는 전부 대통령 자신이 법이라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15년 이사벨을 '거대 부패' 사례 15인 명단에 올렸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도스 산토스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퇴임한다. 그렇게 되면 그의 40년 집권 기간에 앙골라 국부를 독점했던 "많은 사람들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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