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도 위험도 전가…다단계 하청구조가 'STX 참변' 불렀다

입력 2017-08-23 16:17
수정 2017-08-23 16:53
책임도 위험도 전가…다단계 하청구조가 'STX 참변' 불렀다

사망자는 재하도급 업체 '물량팀'…노동계 반발에도 처벌 규정 없어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STX조선해양 선박 폭발사고로 숨진 작업자 4명은 재하도급업체 소속 물량팀었으나 현행법상 다단계 하청이라는 이유로 이를 처벌할 규정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이번 사고가 위험의 외주화가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으로 또다시 이어진 '예견된 인재'였다며 하청구조 개선과 원청 책임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에 따르면 근로계약서 확인 결과 애초 알려진 것과 달리 숨진 작업자들은 STX조선 협력업체의 재도급업체 소속이었다.

조선소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제일 밑바닥인 물량팀은 협력업체에 소속된 임시직 노동자이다.

원청 입장에서 물량팀은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어 '입안의 혀'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다단계 형태로 하청에서 재하청을 거칠수록 단가가 줄고 고용책임도 불분명해져 노동 환경이 열악해지며, 원청의 무리한 요구에도 따를 수밖에 없는 등 그간 수차례 문제시됐다.

이번 사고의 경우 금속노조는 STX조선과 계약을 맺은 K기업이 다시 M업체로 하청을 주면서 단계별 이윤을 떼가고 책임도 전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속노조는 조선업 재하도급 관행상 K·M업체 사이에 또 다른 업체가 몇 개 더 관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문상환 조직부장은 "조선업계에서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 사실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며 "이번 사고로 드러났듯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끊어야 임금도 제대로 지급되고 안전관리에 투자할 비용도 제대로 마련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장작업은 오래전 외주 영역으로 완전히 빠지면서 자동차와 달리 이 일만 따로 하는 정규직은 조선업계에서 없다"며 "그러나 작업은 원청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만큼 사실상 불법파견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30대 도장작업자는 "하청업체는 빨리 작업이 끝나야 인건비나 장비대여비가 줄어 수익이 많이 나는 구조라 안전과 완성도보단 속도에 더 많이 신경 쓴다"며 "원청은 이를 알면서도 빠른 작업속도에 만족하고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수수방관하기 일쑤"라고 원망했다.

한 조선업 관계자는 "평일엔 정규직들도 함께 일을 해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 편인데 원청이 쉬는 주말과 휴일엔 안전관리 책임자가 출근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안전교육을 해도 일 속도가 늦어질까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고도 선박 인도를 두 달 앞두고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협력업체에서 인력을 급히 충당하느라 재하도급 계약을 맺은 것 같다"며 "대신 작업자들은 기본적으로 받는 일당이 있기 때문에 다단계 하도급이라 하더라도 임금 측면에서 보는 손해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빈발한 조선업계 인명사고의 피해자는 대부분 협력업체 근로자들이다.

2012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조선업 대형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37명 가운데 하청 노동자는 78%(29명)를 차지했다.

이번 사고도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다단계 하도급 구조,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안전관리규정 등 기존 조선업계의 관행이 복합적으로 얽혀 터졌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다단계 하도급이 금지된 건설업과 달리 조선업은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

고용부 창원지청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다단계 하도급이라고 해서 이를 불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며 "물량팀이든 1차 협력업체이든 현장에서 안전과 관련된 규정 위반이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사 중 불법파견 소지가 있는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부서인 근로개선지도과로 넘겨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계는 다단계 하도급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현행 법령이 끊이질 않는 조선업계 참변의 주원인 중 하나라는 입장이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이김준택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은 "건설업은 특별법 제정으로 재하도급이 금지됐는데 조선업은 해당되지 않는다"며 "이번과 같은 사고는 기성금에만 관심 있는 협력업체, 납기일 맞추는 데에만 혈안이 된 원청 등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고용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고 결국 밑바닥에 있는 이들만 피해를 본다"며 "조선업도 건설업처럼 특별법 등의 방식을 통해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근절해야 이번 참사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home122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