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벼가 너무 자라부렀어"…오락가락 비에 애타는 농심

입력 2017-08-23 14:34
[르포] "벼가 너무 자라부렀어"…오락가락 비에 애타는 농심

줄기는 아직 가는데 잦은 비에 키는 웃자라 '위태위태'

김제평야 농부 "이렇게 커면 다 쓰러질텐디 어찌야 쓸지 모르겄어"

무덥고 습한 날씨에 창궐하는 '잎집무늬마름병'도 발생

(김제=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여기 봐봐. 벼가 너무 자라부렀어. 작년에는 이것보다 훨씬 작았는디. 벌써 이렇게 커버리면 다 쓰러질텐디 어찌야 쓸지 모르겄어."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인 23일 오후 전북 김제 한 논에서 만난 윤여홍(55)씨는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윤씨는 탐스럽게 이삭이 영근 푸른 논을 가리키며, 연신 "벼가 너무 자라부렀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많이 자라는 게 좋은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너무 자란 게 문제지"라며 논길에 앉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벼를 살폈다.

윤씨 논의 벼는 한눈에 보기에도 키가 껑충했다.

가느다란 줄기 끝에 알알이 맺힌 이삭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휘청거리는 게 곧 쓰러질 듯 걱정스러웠다.

이맘때면 벼의 전체 길이(초장)가 90∼93㎝ 정도여야 하는데 윤씨 논을 비롯한 주변 벼는 벌써 1m를 넘어섰다.

벼는 무작정 크게 자란다고 좋은 게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흐린 날씨에 잦은 비로 벼가 연약하게 웃자라면, 태풍 등 강한 바람이 불 경우 쓰러지기 십상이라는 게 윤씨 걱정이다.

수확 철 이삭이 영글면 가느다란 줄기가 버티지 못해 쓰러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했다.

윤씨는 벼가 웃자란 원인으로 오락가락 내린 비를 꼽았다.

올여름 전북 벼 주산지인 김제에는 사흘에 한 번꼴로 꼬박꼬박 비가 내렸다.

마치 열대 기후처럼 장마철도 아닌데 최고 열흘 가까이 비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비로 인한 피해가 이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윤씨가 손으로 벼 사이를 들추자 노랗게 말라버린 잎들이 드러났다.

잎집무늬마름병, 흔히 '문고병'이라고 부르는 병에 일부 벼가 감염된 것이다.

작물 사이에 통풍되지 않으면 발생하는 문고병은 무덥고 습한 날씨에 창궐하는 경우가 잦다.

여기에 윤씨 논에는 드물었지만 그늘진 주변 논에는 충분하지 못한 일조량으로 벼의 알맹이가 빈 '쭉정이'도 눈에 띄었다.

윤씨는 "김제에 태풍이라도 오면 남아나는 벼가 없을 정도로 키가 너무 자라서 농민들이 다 걱정하고 있다"며 "아직 품질에 지장을 줄 정도로 문제가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비가 계속 오락가락하면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칠까 봐 걱정돼서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궂은 날씨 탓에 전국 벼 초장이 전년보다 7㎝ 이상 큰 것으로 조사됐다"며 "현재 작황을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일조량이 부족하면 벼 포기당 이삭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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