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됐을 때 기른 새 한 쌍에서 시작된 40년간의 조류연구
조류도감 '한반도의 새' 펴낸 송순창 대한조류학회장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새들은 남북한의 하늘을 자유롭게 오가지만 땅 위의 인간들은 단절이라는 벽을 두껍게 쌓아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남북한의 새 이름을 통일시켜보려는 나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기 바랍니다."
한반도에 사는 야생조류들의 정보를 집대성한 조류도감 '한반도의 새: 세밀화로 보는 야생조류 540종'이 출간됐다.
송순창(78) 대한조류학회장이 펴낸 도감에는 텃새부터 철새까지 한반도에 도래하거나 서식·번식하는 야생조류 18목 74과 540종의 생태 정보가 담겼다.
책을 쓴 송 회장은 조류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재야 학자다. 원래 문학도였던 그는 대학 졸업 후 강사 생활을 하다 3선개헌 반대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 1969년부터 12년간 연금 상태로 지내야 했다.
송 회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그때 학부모로부터 선물받은 금화조 한 쌍과 선인장 세 뿌리가 나를 지금의 길로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사회생활을 할 수 없으니 새와 선인장을 키우며 소일했죠. 새는 국경이 없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잖아요. 새를 보면서 자유를 동경했죠. 1980년 해금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700㎡ 크기의 비닐하우스에 새와 선인장이 가득했죠.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처지도 안되고 해서… 그러다 보니 그게 지금까지 직업이 됐네요."
그는 해금과 동시에 대한조류협회를 만들었다. 이후 새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새 서식지와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과 오호츠크해 무인도, 몽골고원과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의 두루미 도래지 등을 찾아다니며 새에 대한 지식을 하나하나 쌓아갔다.
'한반도의 새'는 그렇게 40년간의 연구성과를 총망라한 책이다. 2005년 한반도에 도래·서식·번식하는 452종의 야생조류를 담은 '한반도 조류도감'을 보완해 100종 가까운 새를 추가했고 510여종에 달하는 새의 번식 관련 내용을 풍부하게 담았다.
"그동안 우리나라 조류도감에는 번식 관련 내용이 없었는데 제 책에는 540종 중 512종의 번식 관련 내용을 넣었습니다. 빠진 새들은 희귀종이라 일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새들이죠. 이 중 홍여새 같은 새는 번식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전혀 없을 정도예요. 512종 하는데도 40년이 걸렸네요. 재야학자라 틀린 내용이 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어느 교수보다도 열심히 책을 썼습니다."
북한 지역 조류의 생태 정보를 담은 것도 이 책의 자랑 중 하나다. 저자는 2007년 12월 평양을 방문해 입수한 북한의 연구 자료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당시 북한에서 가져온 도감은 신문지 같은 걸로 만든 건데 컬러도 아니었어요. 그걸 복사해서 가져 왔는데 이 새가 무슨 색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죠. 인쇄는 뒤떨어졌지만, 일부 새들은 남한보다 훨씬 자세한 연구가 돼 있어요. 그때 가져온 북한 논문 두 편은 이번 책에 부록으로 실었어요."
생김새와 전혀 어울리지 않거나 일본식 표현을 사용한 30여종의 새 이름은 새로 제안하기도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뱁새'로, '별삼광조'는 '붉은긴꼬리딱새'로 부르는 식이다.
저자는 남북한의 새 이름을 통합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다.
"남북한이 문화면에서 활발한 교류를 해서 좀 더 나은 책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지금 남북관계가 그럴 형편이 아니라 좀 아쉽습니다. 그래도 남북한의 새 이름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똑같은 것들도 많다는 데 희망이 있습니다. 남북한 학자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면 가능성이 있겠구나 싶어요."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에 동생인 세밀화가 송순광의 세밀화를 함께 담았다. 한길사 펴냄. 652쪽. 1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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