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사태 1년…부산항 위기 벗어났지만 여전히 불안

입력 2017-08-26 07:00
한진해운 사태 1년…부산항 위기 벗어났지만 여전히 불안

국적선사 비중 급락, 한진해운 물량 대부분 외국 선사가 차지

"항만산업 성장하려면 강력한 국적 선사 뒷받침 필요"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오는 31일로 최대 국적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해 파산의 길에 접어든 지 1년이 된다.

한진해운이 모항으로 이용했던 부산항은 환적화물이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외형적으로 물동량 위기를 벗어났지만 급격한 국적 선사의 비중 축소로 인해 앞날이 여전히 불안하다.

26일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 선박들의 발이 묶이면서 물류대란이 벌어졌고 그 여파는 당장 부산항의 물동량 감소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1.98%)부터 올해 2월까지 7개월 연속 환적화물이 줄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수출입화물 증가(2.62%)에도 불구하고 부산항 전체 물동량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0.2% 줄었다.

올해 3월 환적화물이 5.5% 늘어난 이후 증가세가 이어져 7월까지 부산항의 물동량은 20피트 컨테이너 기준 1천194만6천여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1천132만9천여개)보다 5.44% 늘었다.



수출입화물은 6.13%, 부산항에서 배를 바꿔 제3국으로 가는 환적화물은 2.84% 각각 증가했다.

부산항만공사는 이런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사상 처음으로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2천만개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한다고 26일 밝혔다.

1년 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행을 택했을 당시 연간 최대 100만개 이상 환적화물이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일단 그런 위기는 벗어난 셈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진해운 공백의 여파는 여전하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이전에 중국 차이나시핑, 일본 K라인, 대만 양밍·에버그린과 함께 CKYHE해운동맹을 결성해 주도하며 다른 나라의 수출입화물이 부산항에서 환적되도록 이끌었다.

아시아와 미주노선에서 세계최대 선사인 머스크 등과 어깨를 견주는 강자로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진해운이 사라진 뒤 재편된 해운동맹에 속한 외국 선사들이 부산항 환적물량을 어느 정도 줄였는지 정확한 분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부산항을 거쳐간 중국, 일본의 물동량 증가율은 2∼3%대에 그쳐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 등의 30∼40%대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중국과 일본의 선사를 중심으로 자국의 화물을 부산항에서 환적하는 대신에 직접 목적지로 수송하는 비중을 높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같은 해운동맹에 속한 한국선사가 없으니 굳이 부산에서 환적할 이유가 없어진 때문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거쳐 파산함으로써 부산항 전체 물동량에서 국적 선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상반기 38.5%에서 올해는 34.0%로 낮아졌다.

반면 외국 선사의 비중은 61.5%에서 66.0%로 높아졌다.

연간 180만개가 넘는 컨테이너를 부산항에서 처리하던 한진해운이 사라진 반사이익 대부분을 외국 선사가 챙겼다. 우리 기업들이 지불하는 운임 등 국부 유출은 그만큼 커졌다.

현대상선 등 국적 선사의 선복(보유 선박의 화물적재능력)이 한진해운 사태 이후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프랑스의 해운분석업체인 알파라이너 집계에 따르면 국적 선사들의 선복은 지난해 상반기 20피트 컨테이너 116만6천713개에서 올해는 46만2천694개로 60%나 줄었다.

현대상선과 SM상선이 최근 부산항에서 처리하는 물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지만 선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진해운의 공백을 메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적 선사의 든든한 뒷받침이 없으면 부산항은 외국 선사에 휘둘리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자사 이익 챙기기에 혈안이 된 외국 선사들의 지배력이 강화되면 부산항 연관 항만산업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올해 4월 재편과정을 거쳐 종전 4개에서 3개로 숫자를 줄이고 덩치를 키운 해운동맹을 놓고 부산신항의 5개 터미널이 유치경쟁을 벌이면서 가뜩이나 낮은 하역료는 더 떨어졌다.

터미널 운영사에 대한 각종 비용 인하와 추가 서비스 요구 등 외국 선사들의 압박은 더욱 강해졌다.

외국 선사들은 빈 컨테이너 청소를 트레일러 기사들에게 떠넘기는 등 각종 횡포도 서슴지 않아 항만산업 종사자들은 "한진해운이 항만 질서를 유지하는 기준 역할을 했지만 사라지고 나니 외국 선사들이 거리낌 없이 횡포를 부린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수출입화물은 경제 구조상 큰 폭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부산항이 지속해서 성장하려면 외국의 환적화물을 더 많이 유치해야 하지만 국적 선사의 뒷받침이 없으면 쉽지 않다.

환적화물은 선사들이 비용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가장 유리한 항만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휘발성'이 강한 특성이 있다.

외국 선사의 비중이 클수록 안정성이 떨어져 항만 당국이 정책을 세우기 어렵고 외국 선사들의 요구에 끌려갈 개연성이 크다.

현재 전개되는 글로벌 선사들의 규모 확대 경쟁을 보면 부산항은 그런 처지에 놓일 우려가 크다.

머스크, 코스코 등 외국 대형선사들은 끊임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한꺼번에 2만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싣는 초대형선들을 대거 투입하면서 운임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1위인 머스크의 선복은 349만8천여개로 현대상선(35만3천여개)의 10배에 이른다. 중국 코스코는 차이나시핑 합병을 통해 179만7천여개로 늘린 데 이어 홍콩의 OOCL(65만5천여개)까지 인수했다. 일본의 K라인·MOL·NYK 등 3사는 컨테이너 부문을 통합해 선복을 130만개 이상을 늘렸다.

이런 상태에서 외국 대형선사들은 초대형선 발주를 통해 앞으로 10만~50만개의 선복을 더 늘릴 계획이어서 현대상선 등 국적 선사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은 현재 발주한 컨테이너선이 한 척도 없다. 산업은행이 추가 지원에 난색을 나타내 선박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항만업계는 국적 선사의 규모를 세계 상위권으로 확대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해운업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부산항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지금은 아시아 역내를 운항하는 근해선사들이 선박을 늘리고 새로운 노선을 개척해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들의 물동량을 부산으로 유치한 덕에 위기를 벗어났지만 장기적으로 발전을 지속하려면 한진해운을 대체할 강력한 국적 원양선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황진회 해운산업연구실장은 "국적 선사의 규모가 너무 작다"며 조속한 대형화를 주문했다.

그는 "글로벌 선사들이 인수합병으로 끊임없이 경쟁력을 키우는 반면 우리 국적 선사들은 여전히 중소기업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정부가 인센티브 등으로 인수합병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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