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서 "원주민엔 침략일…건국기념일 바꾸자" 목소리 확산

입력 2017-08-22 10:41
호주서 "원주민엔 침략일…건국기념일 바꾸자" 목소리 확산

자치단체, '호주의 날' 또 폐기…정부 강경대응에도 확산할 듯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1788년 영국함대가 호주 대륙에 첫발을 디딘 날이 사실상의 호주 건국기념일로 대우받고 있는 가운데 "원주민에 대한 배려 부족"을 이유로 대체 기념일을 찾자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호주 멜버른 광역시 내 북쪽의 데어빈 카운슬(council) 의회는 21일 건국기념일 격인 '호주의 날'(Australia Day)을 더는 기념하지 않기로 했으며 통상 이날 이뤄지던 시민권 수여식 행사도 열지 않기로 했다고 호주 언론이 22일 보도했다.



데어빈 카운슬 의회는 현행 '호주의 날'인 1월 26일은 "영국 침략의 시작"을 알리는 날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념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안건에 대한 표결에서 6대2로 통과시켰다.

이번 결정으로 앞으로 데어빈 카운슬 내 모든 공식 자료에서는 '호주의 날' 대신 단순히 '1월 26일'로 표기된다.

15만명 규모의 데어빈 카운슬 의회는 모두 9명의 의원으로 구성됐으며, 4명은 녹색당, 2명은 노동당, 나머지 3명은 무소속이다.

이에 앞서 약 9만명이 사는 이웃 야라 카운슬 의회도 약 1주일 전 카운슬 단위로는 호주 내 처음으로 '호주의 날'을 더는 인정하지 않기로 하고 시민권 수여식 등 모든 관련 행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야라 카운슬 의회의 결정 후 맬컴 턴불 총리는 "호주를 단결시켜야 하는 날을 오히려 분열시키는 날로 이용하고 있고 호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연방정부도 즉각 야라 카운슬의 시민권 수여식 개최 권한을 박탈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하지만 멜버른 광역시 내에서는 헵번 셔 카운슬과 모어랜드 카운슬을 포함해 여러 개의 카운슬이 '호주의 날' 기념식 폐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호주 ABC 방송은 전했다.

지금까지 '호주의 날'을 폐기했거나 폐기를 추진하는 곳은 주로 녹색당 등 진보세력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지역이다. 데어빈 카운슬의 경우 멜버른 광역시 내에서 원주민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지역이다.

호주에서는 최근 '호주의 날'로 기념하는 1월 26일은 원주민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억만을 되살리는 날로, 모든 호주인을 하나로 묶기에는 무리라며 대체 일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올해 '호주의 날'에는 원주민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호주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는 등 시위 규모와 함께 목소리도 더욱 커가고 있다.

cool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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