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체크 "음악 모험에 성취감…시대의 대표 장르 담겼죠"
4년 만에 미니앨범 '익스피리언스'…경계 허문 사운드·영어 노랫말
김준원과 강혁준으로 구성…"솔로 앨범 각각 준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4년이 걸려 나온 2인조 밴드 글렌체크(김준원·강혁준, 이상 26)의 미니앨범 '익스피리언스'(Experience)는 이들의 시그니처 사운드인 신스팝 요소를 걷어내고 한층 자유롭게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 변화는 오랜 팬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일 듯하다.
"4년을 연구하면서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어요. 우리가 사는 방식이나 취향, 자주 가는 공간이 달라지니 음악도 자연스럽게 변화했죠. 이번에는 안 했던 것을 해보고 싶었고 다음 앨범은 또 다를 것이고요."(김준원)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준원(보컬 겸 기타)과 강혁준(신시사이저 겸 일렉트로닉스)은 "호불호가 갈릴 것을 각오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팬들이 음악적인 변화를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는 점에 착안해 앨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구성했다. 조지 루커스 감독이 '스타워즈'를 만들 때 바탕을 뒀다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고 연구하며 앨범의 이야기 구조를 짰다고 한다.
김준원은 "모험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연구하는 책을 접했다"며 "수록곡은 총 5곡이지만, 호기심 때문에 새로운 세상에 가서 아름다운 순간을 느끼고 어두운 면도 경험하게 된다는 스토리로 작업했다"고 소개했다.
가장 처음 만든 타이틀곡 '팔로우 더 화이트 래빗'(Follow The White Rabbit)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착안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준원은 "앨리스가 시간에 쫓기는 토끼를 따라가다가 굴에 빠져 이상한 나라로 가는 계기가 있다"며 "타이틀곡은 새로운 음악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곡으로, 뮤직비디오에 한두 프레임씩 토끼 눈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타이틀곡이지만 음원사이트에 공개하지 않고 CD에만 수록한 점도 이례적이다.
흰색 토끼를 따라가며 시작된 이들의 음악 모험은 종잡을 수 없어 다이내믹하다. "앨범에 음악 역사가 담겼다"는 이들의 설명처럼 1960년대 사이키델릭 록부터 올드스쿨 힙합, 1980~90년대 애시드 재즈, 테크노 등 시대의 대표 사운드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한 곡 안에서도 여러 장르가 혼재됐지만 영리하게 소리를 쌓는 사운드 디자인으로 앨범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잃지 않은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전자 사운드보다 리얼 악기에 치중한 점도 눈에 띈다.
그중 '롱 스트레인지 데이스 파트.1'(Long Strange Days Pt.1)은 5분 17초짜리 대곡(大曲)이지만 록에서 솔(Soul), 재즈로 넘어가는 변화가 있어 지루하지 않다.
김준원은 "이 곡은 도입부에선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받은 기타 연주가 나오다가 솔, 재즈로 진화하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메이헴'(Mayhem)에선 아련하게 들리는 성가대 합창을 테마로 소리를 쌓았고, '드리밍 킬스'(Dreaming Kills)는 김준원이 일본에서 시부야를 걷다가 드럼 패턴이 떠올라 그 위에 기타 루프를 합하면서 완성됐다고 한다.
김준원은 "강렬한 테마가 생기면 여러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조합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 곡들에서 또 눈에 띄는 점은 변조된 김준원의 보컬이다. 부드러운 미성인 그의 목소리를 보컬 이펙터를 통해 여성의 가성부터 남성의 먹먹하고 굵은 저음까지 다채롭게 변화시켜 독특한 느낌을 살렸다.
"예전에는 기존 방식과 다르게 발전시키려고 노래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녹음 때 보컬에 효과를 넣어주니 재미있더라고요. 다른 가수의 피처링을 안 쓰고 어떻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까 고민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 다 활용하기로 했어요."(김준원)
강혁준은 "보컬도 소리를 내는 도구"라며 "사람의 실제 목소리가 이펙터를 통해 변화하면 그만의 매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글렌체크의 또 다른 독특한 지점은 영어로만 가사를 쓴다는 점이다. 이들의 곡이 무국적 팝으로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준원은 "영어로 된 음악을 듣고 자랐지만 한글 가사가 좋은 것이 떠오르면 쓸 것"이라며 "언어와 상관없이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 외국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김준원은 과학계통 연구원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 프랑스 등지에서 자랐으며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다가 중퇴했다. 강혁준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미국에서 6년간 살다가 중학교 때 한국에 돌아왔으며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들이 처음 만난 곳은 부산국제고등학교 시절 스쿨 밴드 '테이크 어 브레이크'에서다. 고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이들은 글렌체크를 결성해 2011년 첫 앨범 '디스코 엘리베이터'(Disco Elevator)로 데뷔했다. 2013년과 2014년 연속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 일렉트로닉 음반상을 받았으며, 국내외 대형 페스티벌에 초청돼 리얼 악기와 전자 사운드를 오가는 무대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두 사람은 "많은 사람이 음악을 들어주고 감명받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있지만 차트와 금전적인 부분에 욕심내는 것은 미련한 것 같다. 우린 좋은 음악을 완성하고 그것이 세상에 나왔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 성취감이 우리가 음악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앨범에 대한 평이 갈린다고 하자 "확실히 로망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대중성이 강한 앨범은 아니에요. 하지만 4년이 걸릴 만큼 뿌듯한 결과물이죠. 오랜 시간 공을 들였는데 '뻔하다'고 한마디로 표현한 댓글을 보면 문화를 접하고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의 방식에 아쉬움이 남아요. 반응이 좋은 곡에 대한 경험치가 있지만, 우린 그것을 깨고 새로운 것을 소개하려고 여러 번 작업도 엎을 정도니, 그 이면의 노력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두 멤버)
그간 글렌체크로서 새로운 사운드를 소개하는 데 집중한 두 사람은 각자의 음악색과 역량을 보여줄 솔로 앨범을 계획 중이다.
김준원은 "솔로 앨범에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작업물을 선보이고 싶다"며 "또 노래를 하고 싶어서 보컬이 강조된 앨범이 될 것이다. 바로 준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혁준도 "난해한 것까지 아니고, 글렌체크 때는 하기 어려웠던 좀 더 실험적인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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