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환수한 덕종어보는 1924년 재제작품…"원품과는 달라"(종합)

입력 2017-08-18 13:23
수정 2017-08-18 14:12
美서 환수한 덕종어보는 1924년 재제작품…"원품과는 달라"(종합)

문화재청, 분석 통해 오류 인정…누리집 정보는 2월에 수정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 2015년 미국 시애틀미술관으로부터 돌려받은 덕종 어보가 조선왕실의 유물이 아닌, 1924년에 다시 만들어진 물품으로 드러났다.

환수 당시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이 죽은 아버지 덕종(1438∼1457)을 기려 1471년 제작한 것이라고 발표했던 문화재청은 문화재 행정·연구 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덕종 어보가 원품(原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지난 2월 어보 소장기관인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의 누리집 정보를 수정한 뒤에도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감추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18일 열린 '다시 찾은 조선왕실의 어보' 특별전 간담회에서 "지금 남아 있는 덕종 어보는 일제강점기에 분실됐다가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전문가들로부터 덕종 어보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듣고, 작년 12월부터 옛날 신문 기사를 찾아봤다"며 "원품이 아니라는 사실은 올해 1월에 문화재청에 보고했고, 덕종 어보를 처음 선보이는 이번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알리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덕종 어보는 성종이 아버지에게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이라는 존호를 올릴 때 바친 유물이다. 그러나 1924년 종묘에 사상 초유의 절도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종 어보를 포함해 모두 5점의 어보가 사라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조선왕실의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인 이왕직(李王職)이 조선미술품제작소에 제작을 지시했고, 이렇게 다시 만들어진 물품이 종묘에 안치됐다.

김 관장은 "1924년에 어보들이 도난당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환수한 덕종 어보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예종 어보 3점의 성분을 비파괴 방식으로 분석했다"며 "이 유물들은 구리 함량이 70%를 넘은 반면, 15세기에 제작된 어보 9점은 금이 60% 이상으로 성분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형태도 거북의 등 부분이 위로 솟아 있는 등 차이가 있었다"며 "1924년에 사라진 덕종 어보 중 한 점의 소재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김 관장은 환수 당시 감정에 소홀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 "환수할 때는 1471년에 만들어진 원품이라고 생각했다"며 "1924년에 함께 재제작된 예종 어보들과 모양이 비슷해 따로 성분 분석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덕종 어보를 진품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원품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덕종 어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덕종 어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모조품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 덕종 어보는 지난 2월 문화재위원회에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문화재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 바 있어 진품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덕종 어보가 진품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난해에도 제기됐다. 당시 이정호 한국전각협회 이사는 어보에 있는 글씨가 다른 어보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어보에 새겨진 공경할 경(敬) 자에서 입 구(口) 자 부분을 날 일(日)로 처리한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각에서 사용하는 서체에 장식이 많기는 하지만, 입 구 자를 절구 구(臼) 자가 아닌 날 일 자로 쓰는 경우는 없다"며 "어보에 있는 따뜻할 온(溫) 자와 보배 보(寶) 자도 서체가 이상하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의 주장에 대해 문화재청은 덕종 어보가 진품이라고 밝혔으나, 1년 만에 입장을 뒤집어 오류를 인정했다.

학계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환수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고증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다"며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바로 알리지 않는 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