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미국 대통령도 백인 우월주의 테러단체 KKK에 가입했다

입력 2017-08-17 10:00
[숨은 역사 2cm] 미국 대통령도 백인 우월주의 테러단체 KKK에 가입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약 188㎞ 떨어진 조용한 대학 도시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며 도로를 행진하던 시민들을 향해 승용차 1대가 돌진하면서 1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기 때문이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 지도자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시 당국이 철거하기로 한 게 차량 테러의 발단이다.

로버트 리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영웅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큐 클럭스 클랜(KKK)을 비롯한 백인 우월주의 극우단체 회원 6천여 명은 최근 샬러츠빌에 모여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 현장에서는 나치 찬양 구호도 들렸다.

이에 자극받은 흑인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맞불 시위를 벌이다 차량 테러를 당했다.

주 정부는 유혈사태가 악화할 것으로 우려해 샬러츠빌 일원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전국으로 확산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는 달랐다.

"증오와 폭력은 해묵은 문제다"라며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번 백인 우월 시위를 주도한 KKK는 원(Ku Klux)과 집단(Klan)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합성어로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 12월 발족했다.

전쟁에 승리한 공화당이 흑인을 품고 백인 위주의 권력구도를 깨려는 데 맞서기 위해서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 기병대장으로 맹활약한 포레스트를 비롯한 군인들이 KKK 창설을 주도한다.

이어 정치인과 교회 목사 등 고학력자들이 합세하자 남부 재건을 목표로 KKK를 가동한다.

초창기 활동은 회원 간 친목을 도모하거나 남부 지역 자존심 회복을 외치는 정도였다.

나중에 세력이 크게 확장되자 폭력 집단으로 변질한다.

얼굴을 흰 두건으로 가린 KKK 단원들은 유색인종은 물론, 흑인 해방에 동조하는 백인마저 구타하거나 집을 불태웠다.

남북전쟁에서 죽은 남부군 장병의 혼령을 자처한 이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구타나 살인, 성폭행, 방화를 일삼는다.

폭력 사태가 악화하자 1870년대에 폭력 단속을 위한 연방법을 시행하면서 KKK는 해체된다.

하지만 종적을 감췄던 KKK는 1920년대에 부활해 훨씬 과격해진다.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워 인종·종교·민족 소수집단 전체를 적대시한다.

흑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가톨릭 신자, 동성애자, 이주민 등도 적대 세력으로 간주했다.

유럽 출신 가톨릭 신자와 러시아인, 중국인 등이 많은 공격을 받은 이유다. KKK는 이주민이 늘어나면 개신교와 백인 순수성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남부에서 시작한 KKK는 이민 반대 정서가 강한 지역으로 대거 침투하는 식으로 조직을 키워 1928년에는 회원 약 500만 명을 거느린다.

KKK가 급성장한 비결은 다단계식 조직 관리다.



단원 모집책에게 신입 회원 가입비 10달러 중 4달러를 떼어주고 클리글(Kleagle)이란 직책도 제공한다.

신입 회원이 클리글로 성장해도 애초 모집책은 일정액을 계속 받는다.

KKK가 전국 조직으로 발전하자 정치적 영향력이 덩달아 커졌다.

회원이 텍사스 주 상원의원으로 진출하고 조지아, 앨라배마, 캘리포니아, 오리건 등에서는 KKK가 지지하는 인물이 주지사로 당선됐다.

콜로라도, 아칸소, 오클라호마, 인디아나, 오하이오 등 지방 의회도 KKK가 장악했다.

민족자결주의로 유명한 우드로 윌슨(1856~1924년) 대통령은 KKK를 감싸 안았다.

헌법에 보장된 투표권을 행사하겠다는 흑인들을 살해했는데도 처벌은커녕 두둔 발언을 한다.

"자기방어 본능에 자극받은 남부 백인이 불법 수단을 동원한 검둥이들이 투표하면 정부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 그들을 저지한 것이다”

윌슨의 후임자인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1865~ 1923년)은 막가파 수준이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백악관에서 성경책을 들고 KKK 가입 선서를 한 것이다.

하딩은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을 조사할 때마다 1위를 고수하는 인물이다.

그는 공화당 후보 지명부터 대통령 당선까지 줄곧 운이 좋았다.

공화당은 당내 파벌 다툼으로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정파성이 약한 하딩을 지명한다.

대권 후보직을 어부지리로 확보한 것이다.

대선 공약은 '다시 정상으로'였다.

전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개방 외교와 제1차 세계대전에 진저리를 낸 유권자 정서를 고려한 공약이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매우 불안했다.



주류 운반·제조를 금지하는 법이 시행됐는데도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밀수입된 주류가 암흑가를 중심으로 버젓이 유통됐다.

밤을 지배하던 마피아들은 이권 다툼 탓에 수시로 총격전을 벌였다.

하딩은 대선에서 외모 덕을 톡톡히 보았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과 세련된 말투, 상냥한 매너 등에 힘입어 득표율 60.3%(1천6백만 표)를 기록한다.

토머스 제퍼슨이나 제임스 먼로 이후 최고치로 1936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60.8%를 얻을 때까지 불패 기록이다.

대선 당선이 하딩에게 영광이었는지는 모르나 미국에는 불행의 씨앗이었다.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행위를 일컫는 '워런 하딩의 오류'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다.

하딩은 무능하고 유약한 데다 당내 기반마저 취약해서 각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복잡한 현안을 접하면 늘 난처하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생활은 매우 문란했다.

공화당 주도로 금주법이 제정됐는데도 밤마다 백악관에서 술을 마시면서 포커 도박을 하거나 여자들과 어울렸다.

측근 장관들은 초대형 부패 사건에 줄줄이 휩싸인다.

스캔들 당사자는 하딩의 대선을 도운 고향 친구들이다.

법무부 장관이 압류한 독일인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거액을 챙겼고 내무장관은 국영 유전을 헐값에 빌려주고서 뇌물 5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재향군인회장에 기용한 친구는 보훈병원 건립 예산 수백만 달러를 횡령했다.

주변 인물들이 모조리 썩었는데도 경계하기는커녕 수시로 어울렸다는 점에서 하딩이 권력형 부패의 배후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범죄 행각이 들통나자 친구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그런 하딩은 대통령 취임 2년 3개월 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급사한다.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

사망 직후 백악관과 그의 자택에서 수상스러운 장면이 목격된다. 부인이 하딩과 관련한 모든 서류를 서둘러 불태운 것이다.

지워야 할 비리 흔적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을 회원으로 둘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KKK는 1939년 급격히 위축된다.

'흑백 평등은 공산당'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히틀러와 공조체제를 구축하려다가 2차 대전 발발로 된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2차대전 종전 이후 종적을 감춘 듯했던 KKK는 1960년대에 다시 나타난다.

흑인 차별 관행을 없애자는 민권단체들의 움직임에 반발해 KKK가 수면 위로 재등장한 것이다.

이 기간에 폭탄 테러와 살인, 폭력이 활개 치면서 KKK가 미국 역사에서 악명을 떨친다.

1963년 9월 남부 앨라배마 주 버밍햄의 한 교회에 폭탄이 터져 흑인 소녀 4명이 숨진 사건이 대표 사례다.

1970년대 이후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소탕전에 나서고 조직 내분과 법정 소송에 휩싸이면서 KKK는 사실상 와해하거나 공개 단체로 바뀐다.



오늘날에는 단일 조직이 아니라 여러 분파로 나뉘어 '강한 미국' 등을 목표로 활동한다.

백인 우월주의는 구시대 잔재인 만큼 강한 미국을 건설하기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게 KKK의 논리다.

오랫동안 적대시해온 유대인, 흑인, 동성애자, 히스패닉 등도 회원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변화는 인종차별을 포기한 게 아니라 비난 여론을 피하고 조직을 확대하려는 술수다.

KKK는 크게 위축돼 전체 가입자는 현재 5천~8천 명으로 추정된다.

샬러츠빌 유혈 참사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이미 예고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이슬람교도 입국을 금지하고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런 공약은 백인 중산층에 잠재된 유색인종 차별과 혐오 의식을 일깨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KKK를 비롯한 백인 우월주의 세력에게 잘못된 신호를 줌으로써 테러에 악영향을 미친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인종차별 근절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인종차별 병리 현상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인터넷의 익명 장막에 숨어 소수를 향해 악성 댓글을 쏟아내는 집단 광기는 변종 인종차별이기 때문이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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