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성희롱 피해 여학생 2차 피해 우려…가해자와 함께 수업

입력 2017-08-16 14:47
수정 2017-08-16 14:56
인하대 성희롱 피해 여학생 2차 피해 우려…가해자와 함께 수업

강의실 맨 앞줄 여학생, 뒷줄 남학생…피해자 노출 우려

(인천=연합뉴스) 정광훈 기자 = 인하대 의과대에서 벌어진 집단 성희롱 사건의 가해 남학생들과 피해 여학생들이 같은 강의실에서 함께 2학기 수업을 듣게 돼 피해자 노출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

본과 1학년 학생들의 2학기 첫 수업을 지난 14일 시작한 의과대는 16일에도 남녀 학생이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학교 측은 노출을 우려한 피해 여학생들의 반발에도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자 강의실 맨 앞줄과 둘째 줄에 여학생들이 앉고, 남학생들이 그 뒤에 앉게 하는 좌석 배치 방식을 택했다.

당초 지난 12일 의예과 전원이 모인 SNS 단체 채팅방에 피해 여학생 모두가 창가 마지막 분단에 앉게 하는 좌석 배치도를 공개했다가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여학생들은 '정말 학교 가기가 싫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좌석만 분리해 수업을 받는다면 피해자가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선책으로 나온 게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의 좌석을 앞뒤로 구분해 수업하는 방식이었다.

본과 1학년 여학생들은 2학기 첫 수업 후 교수 면담을 했다.

피해 여학생들은 가해 학생들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아들이지 말도록 법원에 탄원도 냈는데, 결국 같은 공간에서 가해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게 됐다며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과대 관계자는 "의예과 커리큘럼 특성상 분리수업 요구는 감당할 수 없다"며 "다만 영어 등 가능한 과목에 한 해 분리수업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 "일각에서 거론되는 화상 수업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오늘 수업도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며 "필요할 경우, 피해 여학생들에게 심리적 치료와 법률 상담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인천지법 민사21부는 지난 11일 술자리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을 언급하며 성희롱해 무기정학 등 징계처분을 받은 A(22)씨 등 인하대 의예과 남학생 7명에 대한 징계 효력을 일시 정지시켰다.

재판부는 A씨 등이 징계무효소송을 제기한 만큼 본안 소송의 결론이 날 때까지 징계처분의 효력을 일시 정지하고, 올해 2학기 수강신청과 교과목 수강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학교 측에 명령했다.

의과대 커리큘럼이 1년 단위라 올해 2학기 수업을 듣지 못하면 내년 1학기까지 수업을 들을 수 없어 불이익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징계조치의 효력을 일단 정지시킨 뒤 '징계처분이 사회 통념상 타당성을 잃었다'는 가해 남학생들의 주장을 따져보겠다는 입장이어서, 징계 취소 결론이 날 때까지 남학생들은 2학기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A씨 등 인하대 의예과 15∼16학번 남학생들은 지난해 3∼5월 학교 인근 식당과 주점 등지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을 거론하며 성희롱 발언을 했고, 이 사실이 지난 4월 학교 성평등상담실에 신고됐다.

학교 측은 신고 접수 후 진상조사를 벌여 지난달 가해 남학생 21명에 대해 무기정학 5명, 유기정학 6명, 근신 2명, 사회봉사 8명의 징계를 내렸다.

이들 가운데 7명이 징계가 지나치다며 지난달 인천지법에 징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징계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또 징계를 받은 남학생 12명이 의과대 학생상벌위원회의 징계 의결에 불복, 의과대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학교 측은 성희롱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자 피해 학생 인권 보호를 위해 2학기 수업을 분리 운영하고, 총장 직속 '성희롱·성폭력·성차별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분리수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남녀 좌석 구분 방식으로 수업을 계속할 경우, 2차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barak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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