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드기 퇴치에 좋다는 약 썼을 뿐인데"…살충제 양계장 침통

입력 2017-08-16 13:15
수정 2017-08-16 16:08
"진드기 퇴치에 좋다는 약 썼을 뿐인데"…살충제 양계장 침통

닭 흙목욕 못해 대다수가 살충제 써…"소비심리 타격 우려"

(경기광주·남양주=연합뉴스) 김종식 이우성 최재훈 기자 = "30년 양계장 하면서 살충제 성분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진드기 퇴치에 좋다는 약을 썼을 뿐인데 당황스럽습니다."



16일 오전,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나온 경기도 남양주의 양계농가 마리농장에서는 직원 5명이 침통한 분위기 속에 계란을 수거해 쌓는 작업을 했다.

작업 방식은 평소 같았지만, 수거된 계란의 운명은 달랐다. 2만여개의 계란은 시장에 나가지 못하고 시청 트럭이 싣고 가 전량 폐기된다.

남양주시는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마리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은 전량 폐기하기로 했다.

양계장 관계자는 "매일 나오는 계란을 언제까지 폐기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란을 수거하는 일이 벌을 받는 것처럼 참담하다"고 말했다.

진드기는 이 농장의 큰 골칫거리였다. 야생 닭은 흙에 몸을 문지르거나 발로 몸에 흙을 뿌려 진드기를 제거한다. 하지만 복도식 시설의 좁은 케이지에서 갇혀 사는 산란계는 스스로 진드기를 제거할 방법이 없다.

마리농장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농장 전체 크기는 2천500평 정도지만, 닭 한 마리에게는 몸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만 허용됐다.

3개 층으로 이뤄진 복도식 닭장 속에 산란계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닭은 앞쪽에 설치된 모이통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을 뿐, 몸을 바닥에 비비기는 불가능했다.

양계장 관계자는 이런 여건상 진드기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닭에 진드기가 달라붙으면 괴로워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고, 산란율에도 직격타"라며 "효과가 좋다는 약이 있으면 이것저것 약을 바꿔가며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구매한 살충제를 양계장 구석에 일부 살포했고, 닭이나 계란에는 직접 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닭과 계란에 직접 약을 뿌리면 안 되고, 농약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 정도만 들었을 뿐 구체적인 금지 성분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들어본 적도 없다"며 "보통 양계장 업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며 하소연했다.

이 농장에서는 포천시의 한 업체에서 구입한 살충제를 지난 6일 사용했다. 해당 살충제에는 상호나 라벨이 붙어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양계장 인근 농가들도 긴장과 우려에 휩싸였다.

경기도 광주에서 6만마리 규모의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50대 초반 정씨는 "계란 출하가 어제부터 올스톱 됐다"며 "정부가 검사를 마치기로 한 17일까지 6일 치 계란을 출하 못하게 돼 혹시 보관된 계란이 상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농가는 비펜트린이 검출된 양계농가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 있다.

정씨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경기도를 뜻하는 08이 찍힌 계란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퍼지고 있어 크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안성에서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장주도 "AI의 직격타를 맞은 이후 신규 입식도 못 했는데 양계업을 계속해야 할지 근본적인 고민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날 정부는 전국의 산란계 사육농가 243곳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벌인 결과 남양주, 경기 광주에 이어 철원과 양주 농가 2곳에서도 각각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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