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북미 직접대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부의 원칙은 확고하다"면서 "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며, 대한민국의 국익은 평화로,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미동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동맹이며, 미국 역시 현재의 사태에 대해 우리와 같은 기조로 냉정하고 책임 있게 대응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북한과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에 자제해 줄 것을 에둘러 당부한 것으로 들린다. 문 대통령은 19문장으로 된 짧은 발언 안에 '평화'라는 단어를 7차례나 사용했다. 그간 미북 간 말폭탄 공방에 개입을 자제했던 만큼 평화적 해결에 대한 더 강한 메시지를 담아냈다고 하겠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통화 이후 국면전환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과 미국의 '말폭탄' 공방은 일단 지난 주말 이후 숨 고르기에 들어선 듯하다. '화염과 분노', '괌 포위사격', '군사적 해법 장전' 등의 위협적 발언이 오가며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북한은 미국을 직접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내놓지 않고, 미국도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외교적 해결책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각각 폭스뉴스와 ABC방송에 출연해 전쟁임박설을 일축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월스트리트저널 공동 기고문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평화적 압박 캠페인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방한 중인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은 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미군은 미국 정부의 외교적·경제적 압박 노력을 지원하는 데 우선 목표를 두며 이런 노력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군사적 옵션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결국 북미 간 협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미국은 1994년 북핵 1차 위기 때 선제타격까지 검토하며 극한 대치로 치닫다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바 있다. 이번에도 양측이 말폭탄 공방을 벌인 것은 벼랑 끝까지 가는 과정이었고 곧 대화국면으로 들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 만큼 북미 직접 협상 가능성에 대비해 우리의 입장이 무시되는 '코리아패싱'이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투트랙으로 접근해 왔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국이 주도하고, 핵·미사일 문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해결 주체라고 설명해 왔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북한을 설득할 힘도, 타협을 이끌 장치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실을 직시해 마련한 접근법이겠지만 자칫 우리 스스로 발언권이 없다는 오해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북미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모든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그 창구는 미국일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미국 측에 우리의 요구를 당당히 제기하고 관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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