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언 반체제 '체스왕' 카스파로프 돌아오다
(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은퇴를 선언한 러시아 출신의 반체제 '체스왕' 개리 카스파로프(54)가 은퇴를 잠시 접고 14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리는 공식 체스 경기에 출전하려고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체스 선수 9명이 출전해 실력을 겨룬다.
카스파로프는 20년 동안 챔피언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나 은퇴 후 정계에 진출, 체스 세계를 떠났었다.
그는 가장 뛰어난 체스 선수로 손꼽혀 왔다.
고국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의 이름을 따 '바쿠의 짐승'이라는 별칭을 얻은 그는 오랜 기간 뛰어난 체스 실력으로 팬들로부터 '숭배'를 받아왔다.
이번 경기에서 그는 '래피드 앤드 블리츠'라는 이름의 토너먼트에 '와일드카드'(wild card)로 나오게 됐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와일드카드는 일부 스포츠 종목에서 출전자격을 따지는 못했지만 특별히 출전이 허용되는 선수나 팀을 일컫는다.
그는 이번 경기 최고령자이기도 하다.
카스파로프는 이에 앞서 지난달 트윗을 통해 "내가 여전히 체스의 말들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볼 준비가 됐느냐"고 물으면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재은퇴를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3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서는 오랜 기간 체스 선수생활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딱 5일 만 은퇴를 중단하는 것"이라며 "경기 이후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인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100개의 눈을 가진 괴물"이라는 평을 들었다.
카스파로프는 불과 22세 되던 1985년 당시 소비에트연방 출신 체스 세계 챔피언 아나톨리 카르포프를 꺾고 세계 최연소 체스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은퇴를 선언하고 인권운동가로 변신, 반체제 운동을 펼쳐왔다.
그는 1996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와 체스 경기를 벌인 끝에 승리해 화제를 모았으나 이듬해에는 패배했다.
이로부터 3년 뒤 그는 옛 제자 블라디미르 크램닉에게 패배해 체스 챔피언 권좌에서 물러났다.
2005년 은퇴한 카스파로프는 반(反)푸틴 운동 '다른 러시아'(Other Russia)를 결성해 푸틴 비난에 앞장섰다.
2011년 반푸틴 시위에 참여한 그는 이듬해 반체제 여성 펑크록 그룹 푸시 라이엇의 석방운동을 펼치다 구속된 뒤 2013년 뉴욕으로 망명했다.
그는 2014년에는 세계체스연맹(FIDE) 회장에 도전하면서 체스 사랑을 이어갔으나 회장에는 당선되지 못했다.
그는 무려 12년 동안 반체제 인사로 활동하다 이번에 체스 세계로 일단 되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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