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첨가물 등 인체에도 호르몬 이상·비만 유발 사실 규명돼
기존엔 동물실험만 가능…인간 줄기세포 이용한 실험결과 나와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식품과 생활용품 등에 두루 쓰이는 각종 화학 물질들이 인체에 호르몬 이상과 비만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생물학적 수준에서 규명됐다.
그동안 이런 화학물질의 유해성은 섭취(또는 노출)된 사람들과 비섭취자 간 특정 질병 등의 발생률을 비교하는 역학적 조사로만 알 수 있었다.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할 수는 없어 특정 화학물질이 내분비교란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는 생물학적 직접 증거는 동물실험결과들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미국 세다-시나이 재생의학연구소 드루브 새린 교수 팀은 인체의 만능 줄기세포를 활용, 흔히 쓰이는 특정 화학물질이 사람에게도 호르몬 이상과 비만을 일으킨다는 사실과 그 작용 과정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새린 교수팀이 이번에 시험한 화학물질은 3가지다. 하나는 시리얼 등 식품의 산화 방지 및 영양소 파괴를 막고 식용유 등 지방 산패 방지를 위해 쓰는 부틸 히드록시 톨루엔(BHT)이다.
다른 하나는 프라이팬과 종이컵 등 음식용기 코팅제, 화장품과 샴푸 첨가제, 반도체 세척용으로 쓰이는 퍼플루오로옥타노애시드(PFOA)다. 또 페인트, 플라스틱, 포장용기 등의 첨가원료인 트리부틸틴(TBT)도 검사했다.
연구팀은 성인의 혈액 세포를 유전자 재프로그래밍해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바꾼 다음 이를 내장벽 조직인 상피조직과 식욕 및 대사에 관여하는 뇌 부위인 시상하부의 신경조직으로 성장시켰다.
이 조직들을 BHT, PFOA, TBT에 각각 또는 동시에 노출시키고 세포 내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소화기와 뇌 간 연락신호를 담당하는 호르몬에 교란이 일어났으며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됐다.
식사할 때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소화기에서 뇌에 보내는 이 신호체계가 고장 나거나 약화하면 계속 더 먹게 되고 결과적으로 체중이 늘어나게 된다.
음식 속 영양소와 산소를 결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신체 대사활동을 일으키는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면 대사 장애 등 여러 문제가 일어난다.
3가지 물질 중에선 BHT의 유해성이 가장 컸으며 동시에 투여하면 교란 및 손상 효과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훨씬 커졌다.
화학적 손상이 초기 단계 '젊은 세포'에서부터 일어났기 때문에 손상된 호르몬 체계는 임신부와 태아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또 만연한 호르몬 장애와 비만의 중요 원인 중 하나를 시사한다.
무엇보다 이번 개발한 방법은 앞으로 수만 가지 화학물질이 인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신속·간편하고 값싸게 평가하는 데 활용될 여지가 있어 주목된다.
이 연구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렸다.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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