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나치에 저항한 재즈 거장…제천영화제 개막작 '장고'
(제천=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1943년,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 파리. 집시 출신의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는 매일 밤 무대에서 흥겨운 스윙재즈 음악을 연주하며 파리지앵의 인기를 한 몸에 누렸다.
인종차별주의의 표적이 된 대부분의 집시가 수용소에 끌려가 죽어갔지만 음악으로 독일군 장교들까지 매료시켰던 장고는 자신의 유명세 덕분에 안전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치는 그에게 독일 투어 공연을 열 것을 강요한다. 참전을 앞둔 독일 군사들을 위해 무대에 설 것을 요구하면서 파리에서처럼 지나치게 자유로운 분위기는 안 된다며 각종 제약 조건을 내건다.
그 어떤 구속도 거부했던 장고는 나치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옛 연인의 도움을 받아 아내와 노모를 데리고 스위스 접경지로 피신해 국경을 넘기 위한 기회를 엿본다.
10일 개막한 제1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 '장고'는 집시 음악과 스윙재즈를 결합한 '집시스윙'의 창시자로 알려진 장고 라인하르트의 삶을 담은 영화다.
집시로 여러 국가를 떠돌다 열 살 무렵 프랑스에 정착한 그는 18살 때 화재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고 왼쪽 손가락 두 개를 쓸 수 없게 됐지만, 손가락 세 개만을 이용한 자신만의 연주법을 개발해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날렸다.
프랑스 영화제작자 에티엔 코마의 감독 데뷔작인 영화 '장고'는 장고 라인하르트의 일생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나치 점령하에 놓였던 기간을 다룬다.
집시 특유의 자유로운 예술혼을 지녔던 장고는 예술을 억압하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나치에 음악으로 저항했다.
스위스 접경지대에서 집시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나치 파티 무대에 선 장고는 그들이 내건 엄격한 조건을 무시한 채 자신만의 자유로운 음악을 연주하면서 파티에 모인 독일군들의 혼을 빼놓는다.
영화 끝 부분에 등장하는 레퀴엠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학살됐던 집시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가 직접 만든 곡이다.
코마 감독은 이날 제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치 점령하에서 그가 결코 영웅은 아니었지만 음악을 통해 저항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며 "예술을 억압하고 도구로 이용하려는 정치에 저항해 예술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장고의 음악은 스토리와 맞물려 감동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하는 5인조 밴드의 흥겨운 스윙 리듬부터 집시의 애환을 담은 떨리는 기타 선율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협연하는 장엄한 레퀴엠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곡들이 장고의 음악 세계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주인공 장고를 제외한 나머지 뮤지션 역은 연기자가 아닌 실제 뮤지션들이 맡아 곡을 직접 연주했고, 장고 역을 맡은 배우 레다 카테브는 영화를 위해 1년간 기타를 배웠다고 한다.
코마 감독은 장고의 부인과 노모 등 극에 등장하는 집시 역에도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집시들을 출연시켜 극의 사실성을 더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 영화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이어 극장 개봉을 통해서도 국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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