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과거사를 공개합니다"…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기록
신간 '우리는 가해자입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아버지를 대신해 희생자 유족에게 사과한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겠지만, 스스로 가해를 저질렀다는 진실과 마주할 수는 있겠지요."
일본 효고현에 사는 노자키 요시코(71) 씨의 아버지인 고바야시 다로는 중일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고바야시는 1937년 8월부터 2년간 전장에서의 경험을 일기장에 꼼꼼하게 적었다.
예컨대 '오전 7시 출발. 출발 직전에 어제 생포한 4명 사살, 장교 1명은 "중국군 만세"를 외치며 사살됐다'는 식으로 몇 명을 죽이고 풀어줬는지 기록했다.
노자키 씨는 부친이 쓴 200쪽 분량의 일기를 일본 공산당이 발행하는 '아카하타 신문'에 공개하면서 "가족으로서는 가해 사실을 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면서도 "괴롭더라도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건국대 중국연구원이 펴낸 첫 번째 번역학술총서인 신간 '우리는 가해자입니다'는 아카하타 신문의 30∼40대 기자들이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정리한 책이다.
이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개헌 시도를 지켜보면서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부터 한반도 지배, 난징대학살, 태평양전쟁까지 아시아에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 조사하고 반성하기 위해 다양한 기록을 수집했다.
아카하타 신문의 한 기자는 여자근로정신대에 동원됐던 양금덕(86) 할머니를 만나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왔다. 마음이 못에 찔린 것처럼 괴로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해의 현장에는 침략, 학살, 점령의 상흔만 남았다고 지적한다.
또 한일 양국의 외교 문제로 비화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피해자 증언을 소개한 뒤 "위안소 생활은 문자 그대로 '성 노예'로서 비참하기 짝이 없었고, 피해자는 육체적·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책에는 젊은 나이에 전장에 투입됐던 일본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도 담겼다.
오사카에 거주하는 지부 야스토시 씨는 태평양에 떠 있는 뉴브리튼섬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위대한 정의의 전쟁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병사들은 무기도 식량도 없이 버려져 굶주림 속에 죽어갔을 뿐이다"고 항변한다.
저자들은 맺음말에서 "취재를 거듭하면서 증언이 갖는 무게와 소중함을 온몸으로 실감했다"며 "개헌 우익 세력의 근현대사 왜곡 책동이 집요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진실을 계속 전하겠다"고 밝혔다.
홍상현 옮김. 정한책방. 24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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