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인생플랜] (19)공직 40년 '샌님' 농사삼매경 빠지다
100㎞ 출퇴근 농부 문기래씨…여주 고향서 귀농 열정 불태워
"남은 인생 40년 농부로서 즐겁게 살아야죠"…3년째 영농일지
(여주=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 "동이 트면 성남 집을 나섰다가 해가 지면 돌아옵니다. 가족들은 힘든 일을 사서 하고 있다며 성화지만 이젠 비 소식만 들어도 만사 제쳐놓고 여주 밭으로 가고 싶을 정도로 전원생활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달 7일 오전 10시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한 뽕나무밭에서 만 40년 공직 경력의 농부 문기래(61)씨를 만났다.
군데군데 진흙이 묻은 바지에 고무장화를 신고, 손에는 목장갑을 낀 모습에서 그가 3년 전만 해도 깐깐한 공무원이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5천 평 남짓한 농토 중 절반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보살핌을 받는 뽕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머지에는 여주의 자랑 '대왕님표' 벼가 푸름을 뽐낸다.
자투리땅에는 토마토와 배추 등 가족들이 직접 먹을 작물을 심었다.
문씨는 2014년 성남시청 재정경제국장(4급)을 끝으로 명예퇴직한 이후 성남 집에서 50㎞ 떨어진 여주 논밭을 오가며 농사를 짓는 출퇴근 농부가 됐다.
1975년 여주시청 총무과 5급 을(乙·현재의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에게 부모님이 사는 능서면의 논밭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성남시청으로 전근해 건설, 재정, 세정 등 다양한 부서를 거치며 자타가 공인한 '행정통'이 돼가고 있을 때도 그의 마음은 늘 '뽕밭'에 가 있었다.
문씨가 귀농을 결심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고생만 하는 일이 뭐가 좋다고 너까지 하려고 하냐"며 크게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키운 땅의 소중함과 그 땅의 비료가 된 부모님의 땀을 잊을 수 없어 기어코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어린 시절 고된 일로 흠뻑 젖은 아버지의 등을 볼 때마다 '저 땀 덕에 내가 편히 공부한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어요. 언젠가 반드시 저 뒷모습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은퇴 이후에야 꿈을 이룬 셈이죠."
문씨는 스르로 귀농 3년 차 '유치원생'이라 소개한다.
2015년부터 부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농사를 시작한 게 어느덧 3년이 다 돼가지만, 땅을 이해하고 제대로 농사를 짓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겸손의 표현이다.
그는 퇴직 후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뽕나무와 당귀, 감초 등 작물 공부와 농기계 운전 자격증 취득에 시간을 쏟았다.
지금도 주말이면 농업박람회나 귀농 설명회가 열리는 전국 방방곡곡을 가리지 않고 쫓아다닌다.
여주에 정착하지 않고 성남에서 출퇴근하며 '반쪽 귀농'을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디 농사를 처음 지을 때 전북 정읍 오디 농장으로 농사일을 배우러 매주 출퇴근을 했어요. 농가의 자식이라지만 1년 농사를 오롯이 지어본 적은 없었거든요. 처음부터 철저히 배우려고 전북 부안, 경북 상주 등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귀농 교육만 347시간을 이수했죠. 남는 시간은 농기계와 굴삭기 운전 등 자격증 공부에 매달렸어요."
철저한 준비를 마친 문씨는 2015년 봄 새내기 농부로서 첫 농사를 시작하며 비망록을 쓰듯 매일 영농일지를 작성했다.
하루하루 어떤 작업을 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작물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꼼꼼히 기록해 이듬해 더 나은 농부가 되기 위해서다.
"농사를 지은 지 3년 차가 됐다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그때마다 지난해 영농일지를 펴 보면 언제 꽃이 폈고, 언제 가지치기를 해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죠.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농사일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문씨의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주요 농사 상황은 빠짐없이 중계된다.
지난해 10월 7일자 게시물에는 추수를 기다리는 황금빛 논 사진과 함께 "여주쌀 중에서도 최고급 쌀인 능서쌀을 탄생시키기 위한 추수 준비 작업을 했습니다. 이 정도면 큰 문제 없으니 천만다행~ 휴우~~ 어제 작업으로 온몸이 뻐근~한데 그래도 오늘도 또 움직여야겠죠? ㅋㅋ"라며 그날의 상황과 감상이 적혀있다.
그의 지인들은 댓글로 "어느 화가가 이런 황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겠습니까? 과연 장관입니다. 땀이 보이는 듯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며 격려의 말을 남겼다.
그는 이런 소통이 스스로에 책임감을 부여하는 요소가 된다고 말한다.
"페이스북에 무엇이든 글을 올리면 그것은 곧 읽는 사람들과 약속이 돼요. 오늘 접붙이기를 하겠다고 올리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날 다 해내기 위해 노력하죠. 그러다 보면 재미도 있고, 읽는 사람들과의 신뢰도 생겨서 판로 확보에도 많이 도움이 돼요. 지금도 오디 언제 수확하느냐며 찾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달 5일 문씨는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의 연단에도 섰다.
1년 전 이곳에서 귀농 정보를 배웠던 문씨는 2시간여 동안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예비 농부들에게 귀농 선배로서의 조언을 건넸다.
문씨는 "어떤 일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며 재미를 느끼고, 또 그것으로 마음이 편하다면 그게 진정한 인생 2막"이라며 "공직에서 40년 일했으니 100세까지 남은 40년은 몸이 허락하는 한 농부로서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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