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엄마들 극단적 선택…호환보다 무서운 산후 우울증
아기 살해 여성 잇따라 구속…천륜 저버린 범죄, 때늦은 후회
"호르몬 변화·육아 스트레스 등 원인…적절한 치료, 사회안전망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자신이 낳은 생후 1년이 채 안 된 아기를 숨지게 한 여성들이 잇따라 구속돼 충격을 주고 있다.
천륜을 저버린 범죄를 저지른 뒤 때 늦은 후회를 하는 여성들은 출산 후 아이를 키우면서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육아 스트레스로 인한 산후 우울증인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산모 개인의 일로 치부되며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현실이다.
저출산 대책 만큼이나 육아에 시달리는 산모를 돕고, 보호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끄럽게 울며 보챈다며 4개월 된 쌍둥이 아들을 코와 입을 막아 결국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 7일 구속된 A(36·여)씨도 산후 우울증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충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7일 충북 보은 아파트에서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2분가량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아 숨을 못 쉬게 했다.
아기가 의식을 잃자 A씨는 스스로 112와 119에 신고했다. 신고 당시 남편은 출근한 상태였다.
숨진 아기는 지난 3월 A씨가 낳은 쌍둥이 남매 중 남자아이였다. 위로는 3살 터울 형이 있다.
A씨는 병원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어린 아이 셋을 홀로 키우면서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서울 금천구 빌라에서 6개월 된 막내딸을 살해한 B(38·여)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B씨 역시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이불로 아기의 코와 입을 막아 숨지게 했다.
아이 셋의 엄마인 B씨도 경찰에서 산후 우울증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도 B씨가 육아로 인한 심적 고통이 컸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산모 10명 중 1명 이상이 겪는 것으로 알려진 산후 우울증은 불안, 과민, 죄책감 등 증세를 보인다.
심한 경우 아기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젖을 먹이지 않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아파트에서 37세 어머니가 5개월 된 아들을 안고 아파트 8층에서 투신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설령 산후 우울증이라 하더라도 아이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변명의 여지도, 용서받지도 못할 명백한 중대 범죄"라며 "피의자들은 아이가 숨진 뒤 정신을 차리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고 전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심한 우울감을 겪는 산모는 병원을 찾아 적극적으로 진료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안석균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는 중증 산후 우울증이 영아 살해와 연관이 있다"면서 "3주 정도의 길지 않은 치료로도 증상이 좋아지고, 완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모와 아이만 있게 하지 말고 가족이 함께 있어 주면 극단적인 상황 예방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산모의 10∼20% 정도가 산후 우울증을 경험한다는 국가의학정보포털의 자료를 고려하면 산모들이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 속에 산후 우울증 같은 출산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산모들이 전문적인 진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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