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합처럼 비좁고 옹색한 일본'…전쟁에 반대한 일본의 시인들
손순옥 중앙대 명예교수, 일본 반전시 모은 '아우여 죽지말고 돌아와주오'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다. 당시 가해자였던 일본에서도 침략전쟁에 반대해 저항했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간 '아우여 죽지말고 돌아와주오'(들녘 펴냄)는 일본 시를 주로 연구해 온 손순옥 중앙대 명예교수가 일본인들의 반전시反戰詩)를 통해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책이다.
청일전쟁·러일전쟁 시기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일본 위정자들에 맞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반전 목소리를 내는 일본의 시들을 소개하고 시의 배경과 의미 등을 해설한다.
'-겁쟁이 녀석들! 내가 이렇게 보여주마/중대장은 번쩍 군도(軍刀)를 빼 휘둘렀다/네 사람의 조선인은 눈가리개가 벗기었다/순간, 희열에 빛나던 얼굴은, 예리한 칼날을 보자, 확 흐려졌다/곧장 네 사람은 땅바닥에 베어 쓰러졌다/ 피가 떨어지는 군도를 씻으면서, 중대장은 히쭉 웃었다// 우리들의 총구는, 중대장의 가슴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리들은, 잠자코, 끓어오르는 눈물을 삼켰다'(가나이 신사쿠 '총살-어느 국경수비병의 이야기' 중에서)
'불령선인'으로 몰아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하는 행위를 고발한 시다. 조선인들을 총살하라는 명령을 차마 따를 수 없었던 사수들은 사격의 명수였지만 일부러 총을 비켜 쐈다. 한 번으로 죽지 않으면 풀어주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중대장은 결국 조선인을 참살한다. '히쭉 웃었다'는 부분에서 일본 군인의 잔인함이 드러난다. 잔인한 중대장의 모습에 분노를 느낀 일본인 병사들은 총구를 중대장에게 들이대 보지만 그만 권력 앞에 물러선다.
반전시를 가장 많이 쓴 작가 가네코 미쓰하루는 시 '후지산'에서 일본을 '찬합처럼 비좁고 옹색하다'고 표현한다. 그는 '전쟁'이란 시에서는 전쟁을 '반성하거나 감상에 젖는 것은 모두 그만두고/ 기와를 굽듯이 틀에 짜 맞춰, 인간을 모두 전투용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같은 시에서 '전쟁이 생각하는 바에 의하면/전쟁보다 이 세상에 훌륭한 것은 없다./전쟁보다 건전한 행동은 없고,/군대보다 밝은 생활은 없으며,/또 전사보다 더 나은 명예는 없는 것이다'라고 반어적으로 조롱하기도 한다. 그는 평소 만성 기관지염을 앓던 아들의 병세를 일부러 악화시키면서까지 아들의 징집을 피하려 했다. 자식 사랑이라기보다는 군국에 절대 협력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저자는 "책에 실린 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일본의 위정자들이 저지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혹한 희생자로 내몰렸던 일본 서민들의 속마음을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라며 "이들 반전시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들녘 출판사는 "가해자인 일본의 국민으로서 그 시인들이 발표한 시가 피해자인 우리에게 선뜻 달갑게 다가올 리 없겠지만, 저자의 비평을 따라 시를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면 전쟁의 참화 앞에서는 어느 인간도 자유는커녕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삶마저 박탈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288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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