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민주주의 퇴조…경제 침체와 불평등이 원인"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 "아시아서 민주주의 제4의 물결 일어날 것"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민주주의의 퇴조가 10년 전부터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3년간 퇴행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어요. 유럽과 미국에서는 포퓰리즘이 나타나고, 다른 지역에서는 권위주의 정권이 출현했습니다."
민주주의 이론 연구자인 래리 다이아몬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8일 서울 강남구 서울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이제는 모든 학자가 민주주의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를 기반으로 산출한 민주주의 지수를 인용해 새뮤얼 헌팅턴이 민주주의의 제3의 물결이 일어났다고 밝힌 1974년 이후 세계 민주화 흐름을 설명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두 개의 변곡점이 존재한다"며 "냉전이 끝난 뒤 민주주의 발전이 촉진됐지만, 2006년을 기점으로 민주주의 후퇴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로 이뤄진 발트 3국을 제외한 구소련 국가와 중동, 아프리카의 민주주의가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한 뒤 "재앙적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위기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큰 사건이 없었던 2006년이 민주화 퇴보의 출발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이아몬드 교수는 "세계적 경제 침체가 불평등 심화와 중산층 붕괴, 실질임금 정체를 불러왔다"며 "자식 세대가 더는 번영의 꿈을 꿀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포퓰리즘이 부상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계화로 자본과 사람의 이동이 늘어났는데, 이민자 급증이 선진국 사회에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며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자신감을 갖고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노력했던 유럽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어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전쟁의 부당함을 지우기 위해 민주주의 확산에 힘썼으나 2007년 종전과 동시에 민주화 지원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처럼 윤리의식이 있는 사람도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과제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제4의 물결이 일어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중국 공산당이 급진적인 변화를 겪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서 톈안먼 사태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다시 발생하면 공산당은 붕괴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같은 인물이 등장할 수도 있다"며 "중국 공산당이 10∼20년은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시민사회는 중국의 민주화를 도울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정치적 변화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탄핵을 요구한 촛불집회에 동의한다"면서도 "정부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국민이 거리로 나온다면 민주주의의 힘은 약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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