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北외무상 방문 직전 "엄중 우려" 이례적 대북성명

입력 2017-08-05 19:38
아세안, 北외무상 방문 직전 "엄중 우려" 이례적 대북성명

北 반대하는 'CVID 비핵화' 명기하고 韓 대북구상 지지표명



(마닐라=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필리핀에 모인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 외교장관들이 5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등 연쇄 도발에 "엄중한 우려"(grave concern)를 표하는 별도 성명을 발표한 것은 그 내용과 시점 면에서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6일 새벽 마닐라를 찾기 직전 강한 대북 메시지를 담은 별도의 성명이 나온 것은 한반도 문제에서 중립적 입장을 지향해온 아세안의 전통에 비춰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외교부 당국자는 평가했다.

아세안은 그간 대북 입장 표명에서 '양비론'으로 불릴 정도의 신중함을 보여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엄중한 상황에서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아세안이 가지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협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사건과 그 이후 북한의 '인질외교'가 북한에 대한 아세안의 인식을 크게 악화시킨 점도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성명 내용 면에서도 주목할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북한이 지난달 2차례 쏘아 올린 화성 14형에 대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으로 적시했고, 북한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지지했다. 아세안 자체 회의의 결과문서에 한미일의 강경한 북한 비핵화 원칙을 상징하는 'CVID'가 명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이와 함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을 향한 남북관계 개선 구상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은 우리 정부의 베를린 구상과 남북대화 제의 등에 대한 지지의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의 관련 노력에 대한 아세안 차원의 공감대를 확보한 것"이라며 "대북 제재·압박을 위한 국제공조 동참과 함께 조속한 대화재개 필요성을 강조하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노력에 대한 아세안 차원의 명시적 지지"라고 평가했다.

당국자는 성명 내용 전반에 대해 "아세안 출범 50주년을 기념하는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의 서막을 여는 강력한 내용의 별도 성명"이라며 "이번 아세안 회의에서 북핵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톤 세팅'(tone setting, 기조설정) 차원의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성명에서 "ARF 참가국으로서 ARF의 비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라는 등의 대북 주문 내용은 북한의 ARF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키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 "ARF에서 다른 회원국과 함께 북한의 회원 자격을 정지할지 심도있게 논의하겠다"고 했던 수잔 손턴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은 이날 ARF 회의장인 마닐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세안 성명에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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