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실험 손바닥보듯…'과학수사 지진학'을 아시나요

입력 2017-08-06 08:00
북핵실험 손바닥보듯…'과학수사 지진학'을 아시나요

"거짓말도 보인다" 만리밖에서도 위치·위력 측정

1∼5차 실험에 관측기술 비약…국제사회 대응에 기초정보 제공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어!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

작년 9월 9일 오전 한국, 러시아, 일본 등지에 있는 지질학 관측소에는 규모 5.2의 지진이 관측됐다.

보통 지진과 신호는 같았으나 진앙이 북한 지하 핵실험장 근처였다.

지질학자들은 북한의 5차 핵실험이 있었다고 금방 결론을 내렸다.

경찰이 교통사고 때 도로의 바퀴 자국을 조사하듯 지진파 원인을 분석해온 '과학수사 지진학'(forensic seismology) 덕분이다.

6일 과학잡지 '사이언스뉴스'에 따르면 이 분야는 1996년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의 채택과 함께 발전해왔다.

현재 CTBT은 180여 개국이 서명했으나 핵기술을 보유한 44개국이 서명과 비준을 마쳐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발효되지 않고 있다. 미국과 북한 등 8개국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과학수사 지진학의 뜨거운 연구주제는 지난해 2차례를 포함해 5차례 핵실험이 강행된 북한 풍계리다.

북한 핵탄두의 위력이 갈수록 세지는 데다가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운반체계 기술도 향상돼 국제사회에 기초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감이 커진 것이다.

미국 '웨스턴 지구물리학'의 학자 델레인 라이터는 "과학수사 지진학은 북한 같은 나라에 어떤 역량이 있는지 알려주는 지식 건조물"이라고 말했다.

라이터는 "북한이 실험 결과를 마음껏 방송하지만, 서방 학자들은 그 주장이 못 미덥다"며 "북한 주장이 옳은지 실체를 이해하는 게 우리의 진짜 관심사"라고 설명했다.



◇ 의심의 발단은 진원 깊이와 지진파 특색

전 세계에서 관측기에 잡히는 규모 5.0 이상의 지진은 1천200∼2천200개 정도다.

과학수사 지진학자들은 자연적인 것인지 인공적인 것인지부터 밝힌다.

지구 내부 에너지뿐만 아니라 채석장 폭파, 탄광 붕괴, 지하 핵실험 등으로도 지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일단 진원의 깊이가 10㎞ 미만이면 인공지진의 가능성이 의심된다.

사람이 지하 6∼7㎞까지는 어려워도 파고 들어갈 수 있어도 그 이상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P파, S파, 레일리파 등 여러 지진파에 대한 분석으로도 자연과 인공을 판별할 수 있다.

폭발에 따른 지진은 나중에 지표를 흔드는 레일리파의 진폭이 처음에 닥치는 P파보다 작다는 일반적 특징이 있다.

CTBT에 서명했으나 비준하지 않은 중국은 2003년 뤄부포호(羅布泊湖)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의혹을 산 적이 있었다.

진원의 깊이가 6㎞였으나 P파와 레일리파를 비교한 결과 자연지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만약 폭파에 따른 파동이었다는 결론이 나왔다면 방사성 물질을 감시하는 조직과 연계해 화학적 폭발인지 핵실험인지 따지는 절차로 나아갈 상황이었다.



◇ 북핵실험 때문에 덩달아 발전한 과학수사 지진학

핵 프로그램 때문에 '불량국가'로 낙인이 찍힌 북한은 최근 과학수사 지진학을 발전시킨 동력 가운데 하나였다.

핵도발을 공공연히 언급하는 북한은 실험했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 얼마나 강력하고 파괴적 인지까지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3년 CTBT 탈퇴를 선언하고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강행했다.

동아시아 관측소들의 측정 결과 진앙은 풍계리 근처였고 진원의 깊이는 몇㎞에 불과했다.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있는 감시소는 2주 뒤 지하 핵실험장에서 누출돼 동쪽으로 흘러가던 방사성핵종 제논을 감지해 핵실험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인공, 자연지진을 구분하는 P파와 레일리파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은 것을 포함해 폭발 파동이 학자들의 원론적 지식과 달랐다.

핵실험 확인을 둘러싼 새 난제가 돌출한 상황이었다.

북한이 2009년 5월, 2013년 2월, 작년 1월, 9월 핵실험을 추가로 4차례 강행하면서 결국 의문은 풀렸다.

각 핵실험의 파동을 일일이 비교해 분석한 결과 풍계리의 지형과 지질 때문에 독특한 파동이 형성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진·핵실험을 탐지하는 노르웨이 기구인 '노르사르'(NORSAR)의 학자 스티븐 기번스는 "폭발로 생성되는 지진파는 그 지역의 지문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만리밖에서도 풍계리 손바닥보듯

폭발로 일어난 지진일 경우 지진 규모가 같더라도 진원이 깊을수록 위력이 크다.

실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면 핵폭탄의 강도를 알아낼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특히 풍계리 만탑산은 울퉁불퉁한 화강암이라서 핵실험 때 예사롭지 않은 지진파를 보내면서 학자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학자들은 5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위성사진 분석, 시뮬레이션 실험 등을 통해 결국 구체적 실험 위치를 지목했다.

노르사르는 그 결과를 학술지 국제지리학저널을 통해 올해 1월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작년 9월 5차 핵실험은 해발고도 2천205m 만탑산 정상에서 수직으로 아래에 있는 땅속에서 이뤄졌고, 규모 5.2 지진을 생성한 것을 고려할 때 위력은 최소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비슷했다.

학자들은 가까이에서 관측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북한 지형을 고려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이 지원하는 '에너지발생원 물리학 실험'의 일부가 그 사례다.

학자들은 과거 미국이 828차례 지하 핵실험을 실시한 미국 네바다 주 남부에서 2011년부터 작년까지 6차례에 걸쳐 폭탄을 터뜨렸다.

핵실험과 재래식 폭탄의 지진파는 기본적으로 같다. 이를 전제로 깊이, 위력, 주변 지질 등 조건을 달리하며 지하에서 화학 폭발을 일으켜 지진파 자료를 모았다. 만탑산을 가정해 화강암으로 봉쇄한 폭발물도 터뜨려 특색을 조사했다.

풍계리의 핵실험 지진파가 왜 일반적인 폭발과 달랐는지 재확인됐다.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는 이 같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북핵실험을 더 정확히 파악할 새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에너지발생원 물리학 실험은 내년에 2단계에 들어간다. 지진파가 파괴된 화강암 속에, 충적토(퇴적된 흙) 속에서는 어떻게 퍼지는지 관측할 예정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할 때 장소가 바뀌는 등의 변수로 지진파가 특이해질 때를 대비한 가상실험이다.

라이터는 "지진학자들은 폭발을 기다렸다가 위치, 위력을 알아내는 기이한 경쟁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북한 핵프로그램의 진척상황을 잘 알게 되고, 이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불량한 실험에 어떻게 대응할 때 유용한 정보가 된다"고 말했다.

jangj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