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큐·TV·폰 사절…책에서 찾는 힐링휴가 '북스테이' 인기
미니도서관 갖춘 게스트하우스 전국 10여곳 성황…새 휴양지 등극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책 읽으며 '나만의 북극성' 찾죠"
(파주=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스트레스도 한 꺼풀씩 날아갑니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언덕 깊숙한 곳에 조용히 자리 잡은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의 1층 접객실에는 양쪽 벽에 빽빽하게 책이 꽂혀있다.
창 너머에서 내리쬐는 강한 여름 햇살, 헌 책 냄새와 함께 주인장이 끓여내는 커피 향만 느껴질 뿐 마치 건물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적막하다.
국회 공무원인 임지연(27·여·가명)씨는 여름 휴가를 맞아 이달 3일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휴가가 시작된 지난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갔지만 제대로 쉬지 못한 느낌이었다. 직장에서 온종일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고, 각종 뉴스에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는 그에게는 가족들이 휴가지에서도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거나 TV를 보는 모습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임씨는 모티프원에 머무는 동안 곳곳에 꽂혀있는 1만4천여권의 책 속에 파묻혀 지낼 계획이다. 밤이면 친구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며 달곰한 스파클링 와인도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임씨는 "바닷가에 한 번 더 갈까 하다가 사람 많은 게 싫어서 이곳을 찾았는데 기대 이상"이라면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민원인들을 상대하고 서류 더미와 씨름하느라 지쳐있었는데 조용한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임씨처럼 '힐링'을 원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책을 보며 하룻밤을 보내는 '북스테이'가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
모티프원처럼 작은 도서관에 숙박시설이 결합한 형태의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는 10여년 전부터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해 현재 전국 각지에 10여곳 정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예전에는 음악가, 작가 등 주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창작활동을 하려고 게스트하우스를 주로 찾았지만, 최근에는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젊은 직장인이 많이 늘어났다.
이들이 북스테이에 끌리는 이유는 독서를 하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에서 잊고 지내던 진짜 자신을 대면하기 위해 왁자지껄한 유명 휴가지가 아닌 책과 함께하는 '신선놀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유통 대기업에서 일하는 8년차 회사원 오모(37)씨는 "하도 사는 게 피곤해서 가족들도 집에 두고 혼자 북스테이를 했는데 제대로 '힐링' 하고 왔다"면서 "계곡이나 바다에서 고기 굽고 술 마시며 보내는 휴가는 지겹고 오히려 몸만 더 힘들다"고 말했다.
독서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좀처럼 없다는 점도 북스테이의 매력으로 꼽힌다.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 대부분은 TV가 없고 숯불 바비큐, 음주와 가무가 불가능하다. 어린이 숙박객을 받지 않는 곳도 있다.
전남 고흥에서 2년 전부터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 '가고파 그집'을 운영하는 최화준씨는 "처음에 방마다 TV를 뒀는데 의외로 손님들이 다들 싫어해서 없앴다"면서 "복잡한 인간관계와 디지털 정보의 혼란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쉬는 시간 만큼은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려는 사람들이 북스테이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티프원을 운영하는 이안수씨는 "책을 읽으면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나의 북극성'을 찾을 수 있다"면서 "좌절과 위로, 성공과 실패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좌표를 찾아가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ah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