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낙원일줄 알았는데"…시리아로 간 인도네시아 가족의 악몽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누르샤르드리나 하이라다니아(일명 누르·19·여)는 2년전 17살의 나이로 일가족 20여명에게 시리아 이주를 제안했다.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를 점령하고 2014년 6월 건국을 선언한 '이슬람 국가'(IS)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무상교육과 의료혜택, 부채탕감, 직장제공 등 IS가 약속한 각종 혜택에 혹한 누르의 가족은 갑론을박 끝에 사업을 정리하고 시리아로 향했지만, 그들의 꿈이 악몽으로 바뀌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일 AP 통신과 인도네시아 언론에 따르면 누르는 최근 IS의 수도인 시리아 락까를 탈출한 뒤 인근 아인 이사 지역의 난민 캠프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시리아로 향했던 할머니와 삼촌은 생활고와 폭격으로 사망했고, 아버지와 사촌 등 남자 가족들은 별도의 시설에 갇힌 채 쿠르드계 민병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누르는 "정말로 후회된다. 나는 너무나도 멍청하고 순진했다"면서 "가족들과 함께 자카르타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와 가족들은 전재산을 팔아 마련한 3만8천 달러(약 4천200만원)로 터키를 거쳐 2015년 8월 시리아의 IS 점령지에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이탈한 가족 일부는 본국으로 송환돼 당국의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됐지만, 국경을 넘는데 성공한 이들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부닥쳤다.
남자는 세뇌 교육을 받은 뒤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고, 누르와 21살인 언니 등 여성 가족들은 분리 수용된 채 얼굴도 모르는 IS 반군 대원들과의 결혼을 강요받은 것이다.
불의와 야만이 판치는 락까의 분위기 역시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르는 "참수, 납치, 여성 성노예 같은 이야기는 IS에 대한 흑색선전인 줄만 알았다"면서 "기숙사 내의 여성들도 서로 다투고 험담하며 물건을 훔쳐댔고, 종종 흉기까지 동원해 싸움을 벌였다"고 털어놨다.
결국, 누르의 가족은 락까에 적응하지 못했다.
누르의 아버지와 사촌형제들은 군사훈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IS가 운영하는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이후 강제 징집을 피해 은둔 생활을 해야 했고, 의학과 컴퓨터 교육 등 IS가 약속했던 혜택도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 사이 인터넷을 통해 라카 탈출을 알선하는 브로커를 찾은 누르는 올해 6월 10일 4천 달러를 주고 가족과 함께 쿠르드 민병대 점령 구역으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보복을 우려해 익명을 요구한 누르의 사촌동생은 "우리는 시리아에서 싸우러 온 것이 아니고 이슬람 국가에서 살고 싶었을 뿐이지만, 그건 진짜 이슬람 국가가 아니었다. 그곳은 무슬림이 다른 무슬림과 싸우는 부정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귀국하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네시아 외무부의 랄루 무하마드 이크발 해외국민보호국장은 "이들은 2년 동안이나 IS 점령지에서 생활했기에 (귀국에 앞서) 위험도 평가를 받아야 하나 현재 수용된 시설이 이라크나 시리아 정부 관할 구역이 아니어서 접촉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누르는 "정말 후회된다. 너무도 멍청하고 순진했다"면서 "터키행은 휴가 따위가 아니라 정말 위험한 여정이었다. 제발 신께서 나를 용서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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