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스스로 '자문기구'라는 공론화위, 더 흔들면 안 된다

입력 2017-08-03 19:23
[연합시론] 스스로 '자문기구'라는 공론화위, 더 흔들면 안 된다

(서울=연합뉴스) 갈팡질팡하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공사의 중단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단지 공론화 결과를 '권고' 형태로 정부에 전달하는 자문기구 역할만 하겠다는 뜻이다. 공론화위가 3차 회의에서 결정한 역할 범위는 '독립적 지위에서 공론화를 설계하고 공론화 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3일 "공론조사는 특정 정책사항에 대해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사안에 대한 공론을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서 "공론화위도 그 범위 안에서 소관 사항을 관장하는 자문기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론화위는 시민 2만 명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하고, 1차 조사 응답자 중 500명을 무작위로 뽑아 토론 등 숙의 절차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중도 이탈자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숙의 과정에 참여하는 인원은 350명 내외로 예상되는데 이들을 '시민대표참여단'으로 부른다고 한다. 정부 발표 단계에서는 '시민배심원단'이라는 명칭이 나왔으나 '결정 기구'라는 인상을 지우기 위해 바꾼 것 같다. 하지만 시민참여단이든 시민배심원단이든 공론화 과정의 결론을 여기서 낸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공론화위는 지난달 27일 위원회의 기본 성격과 역할 범위를 놓고 한차례 혼선을 빚었다. 2차 회의 직후 대변인 브리핑에서 "공론조사 방식을 따르되 조사 대상자들이 공사 재개 여부는 결정하지 않고 권고사항 정도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힌 게 도화선이었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론화위가 구성하는 시민배심원단 결정을 그대로 정책에 수용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으니 뒷말이 나올 만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시민배심원단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하며 진화에 나섰다. 공론화위는 가부간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는데, 정부는 결론을 수용하겠다고 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튿날 김지형 위원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위원회 역할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결정한 내용이 없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일단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공론화위가 다시 '결정 기구가 아닌 자문기구' 역할을 하겠다고 했으니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론화위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정부와 이견을 보이다가 처음 입장을 뒤집으면 스스로 독립성을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미 상처받은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공론화위가 시민을 통해 내려주는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해 정부가 결정할 것"이라면서 "정부가 책임, 결정의 주체라는 건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공론화위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은 그대로이나 '결정과 책임의 주체'가 정부라는 사실을 새삼 강조한 것 같다. 사실 정부가 결정과 책임의 주체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굳이 총리가 나서서 이렇게 강조할 필요도 없다. 거꾸로 보면 공론화위의 법적 성격과 권한 범위를 놓고 그만큼 혼선이 많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역할 범위를 둘러싼 정부와의 이견 노출로 이미 공론화위는 공정성을 적지 않게 의심받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노조 등의 가처분 신청으로 법률적 시비에도 휘말렸다. 조만간 공론화위 구성의 적법성을 따지는 행정소송도 이어질 것 같다. 그렇다고 찬반 여론이 첨예한 국가 정책을 '숙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결정하겠다는 명분까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에겐 낯설지만 현대 민주주의의 맹점을 보완하는 신선한 시도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하면 결론의 합리성은 고사하고 완주를 걱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나마 공론화위가 목표로 한 활동을 끝내도록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공정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정부는 위원회 활동에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조금이라도 주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최근 '탈원전' 정책 홍보를 시작한 것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