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기록한 군함도 고통의 역사
강제연행 조선인과 중국인 증언 모은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영화 '군함도'의 흥행 돌풍으로 군함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군함도의 역사를 기록한 또 하나의 책이 나왔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은 일본 하시마(군함도의 원래 명칭)에 강제 연행됐던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증언과 관련 자료를 일본인들이 기록한 책이다.
1984년 출간한 '원폭과 조선인' 제4집에서 1925∼1945년 하시마에서 사망한 일본인과 조선인, 중국인의 기록을 발굴하고 분석했던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전 대표들과 현재 사무국장 등 3명이 함께 썼다.
현재 7집까지 출간된 '원폭과 조선인'을 비롯해 모임이 지금까지 펴낸 책의 내용 중 하시마와 관련된 부분을 추려 한 권으로 묶은 것으로 일본에서는 2011년 7월 초판이 출간됐다.
책은 하시마에서 직접 생활했던 한국인들의 증언과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재판에 하시마 관련 원고로 참여한 중국인 3명의 서면 진술록 등을 통해 하시마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하 수백미터를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막장에 들어가서 석탄을 파는 일을 했는데, 일본인은 탄층 천장이 높고 채굴하기 쉬운 곳을 맡고 우리 조선인은 폭이 50∼60센티미터밖에 안되는 낮고 좁은 곳에 들어가 몸을 옆으로 굽혀 곡괭이를 가지고 손으로 채굴을 해야만 했다. 장시간의 노동 끝에 우리는 새까맣게 되어 지상으로 올라왔다. 매일 그런 생활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 이곳에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섬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하시마 탄광에서 일하다 탈출했던 류희긍씨의 증언 중)
"이런 중노동에 식사는 콩깻묵 80%, 현미 20%로 된 밥과 정어리를 덩어리째 삶아 부순 것이 반찬이고 저는 매일같이 설사를 해서 매우 쇠약해졌습니다. 그래도 일을 쉬려고 하면 감독이 와서, 왜, 거기 진료소가 당시는 관리사무소였는데 거기로 끌고 가 때렸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네, 일하러 가겠습니다'하고 말할 때까지 구타를 당했습니다. (중략) 이 외길을 매일 지나면서 제방 위에서 멀리 고향 조선쪽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바닷물에 뛰어들어 죽으려고 했는지 모릅니다."(14살 때 징용됐던 서정우씨 증언 중)
하시마에서 탈출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익사한 조선인들에 대한 처리 방식에서는 일제의 조선 침략의 본질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시마에서 맞은편 육지 도로변에는 '난고시묘 무연고 해난 사망자의 비(碑)'가 남아있다. 1986년 시신 발굴 작업을 한 결과 네 구의 시신이 확인됐다.
올해 4월 세상을 떠난 다카자네 야스노리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전 대표는 당시 탄광에서 강제연행자들의 성명과 출신지를 파악하고 있었던 만큼 당시 죽은 이의 고향으로 연락할 마음만 있었다면 쉽게 부모나 연고지를 알아내 연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인도적 측면에서도 당연히 취했어야 할 그러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바로 일본의 조선 침략의 본질이 있다"면서 "행선지도 모르는 강제연행이 출발점이라면, 사망자를 무연고 사망자로 만들어내는 것이 종착점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번역자 중 한 명인 박수경 합천평화의집 운영위원은 "이 책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무책임만을 비판하기 위해 출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본에도 양심적 지성인, 시민단체들이 존재하며 이들과 연대하지 않고서는 과거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힘을 빌려 물증을 찾고 그들과 목소리를 함께해 과거사를 똑바로 정립하고 고통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자 중 한 명인 시바타 도시아키 사무국장은 영화 '군함도'의 고증에도 참여했다. 그 인연으로 영화 '군함도'의 류승완 감독이 추천사를 썼다. 도서출판 선인 펴냄. 박수경·전은옥 옮김. 363쪽. 2만2천원.
zitro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