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25년과 조선족] ② 밀집형→네트워크형 사회로

입력 2017-08-07 07:30
수정 2017-08-07 07:38
[한중수교 25년과 조선족] ② 밀집형→네트워크형 사회로

新정주지 구심점은 기업가단체…다양한 행사로 내부결속 다져

"차세대 미래는 교육" 자녀 정체성 위한 주말학교 속속 설립

(베이징·칭다오·도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면서 조선족 사회의 성격도 농촌에 기반을 둔 밀집형에서 도시의 네트워크형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 대도시와 한국, 일본 등지에 형성된 신(新) 정주지의 대표적인 네트워크로는 조선족기업가협회와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등이 있다. 이와 별도로 노인협회, 여성회와 체육·문화 동호인 단체 등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조선족 사회의 내부 결속에 기여한다.

최근에는 자녀들의 정체성 함양을 위한 주말 한글학교도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조선족 학교가 없다 보니 중국에서 '한족화', 일본에서는 '일본화'의 우려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 "뭉쳐야 산다" 새 공동체 이끄는 기업인 네트워크

새로운 정주지에서는 기업가들의 모임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며 공동체 건설에 앞장선다.

이들 단체는 조선족의 단결과 차세대 육성 사업에 앞장서 노인협회·여성회·주말 한글학교 등을 꾸준히 후원하고 민속축제나 운동회 등을 개최한다.

중국 칭다오와 베이징에서는 조선민족축제와 운동회가 해마다 열린다. 20만 명이 거주하는 칭다오의 경우 4분의 1에 해당하는 무려 5만여 명이 참가한다. 전동근 청도조선족기업협회장은 "동북 3성에도 이 정도 규모의 축제는 없다"며 "타향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기에 더 잘 뭉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 행사에는 시 관계자 등 정부 인사들도 참석해 축사한다. 이주확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장은 "그만큼 조선족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라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협회는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차세대에 한민족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역사 특강 등 각종 강연회도 자주 연다.

월드옥타도 차세대 무역스쿨을 개최하거나 다른 네트워크의 활동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조선족 사회를 지원한다. 월드옥타 산하 중국 25개 지회의 회원은 2천200여 명에 이르며, 이들의 90% 이상이 조선족이다.

이석찬 월드옥타 베이징지회장은 "50대 이상의 창업 1세대는 민족교육을 받고 성장해 정체성이 뚜렷한데 신정주지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선배 기업인들이 무역스쿨에 관심과 애정을 쏟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신거주지에서는 3대가 모여 사는 가족이 늘고 있어 노인회의 활동도 활발하다. 또 여성회, 향우회, 동문회 등 다양한 단체가 내부 소통과 연결의 매개체 역할을 맡고 있다.



◇ 한글학교 곳곳 들어서…"중국선 10년내 100개로"

중국에서 동북 3성을 벗어난 지역의 조선족 정규학교는 칭다오대원학교가 유일하다. 유치부와 초·중·고 등에 830여 명이 다니는 이 학교는 조선족기업가인 최연옥 이사장이 설립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지역의 조선족 사회는 자녀들의 정체성 교육을 위해 자체적으로 주말 한글학교를 세우고 있다.

베이징, 광저우, 톈진 등 신거주지 10곳에 '정음 우리말 학교'가 생겼다. 현지 학교에 다니는 조선족 자녀들이 주말을 이용해 한국어와 한국문화, 조선족 역사 등을 배운다.

재외동포재단은 설립 후 3년이 지나야 정식 한글학교로 인정해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지만 조선족 한글학교는 첫해부터 지원한다. 정체성 상실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동포사회의 학교 설립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재단의 김봉섭 교육지원부장은 "조선족 차세대의 한족화를 막는 길은 학령기인 만 6∼13세 때 우리말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학부모들도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어서 10년 안에 주말학교를 100개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일본 도쿄에도 조선족 자녀를 위한 주말 한글학교인 '샘물학교'가 있다. '재일 조선족 여성회'가 2008년 자체적으로 설립해 운영하는 곳으로 조선족 2세들이 한국어와 한국 역사·문화를 배운다.

13명의 교사가 유치부·초등부 170여 명을 가르친다. 학교가 하나뿐이다 보니 2시간 넘는 거리에서 자녀를 데리고 오는 학부모도 있다.

재일 조선족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자녀가 민족어인 조선어와 고향의 말인 중국어를 배우지 못해 어정쩡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현재로써는 주말학교가 말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전정선 샘물학교 교장은 "국제결혼 가정 자녀도 있어서 학생들 국적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다양하다"며 "한국과 중국을 자연스레 오가며 생활하는 아이들이라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면 3국을 잇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학생이 매년 증가하고 있어서 교사 수급과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면 분교를 4개 정도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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