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이주 80년] ⑭ 직접 겪은 곽응호·천억실 씨

입력 2017-08-02 10:23
수정 2017-08-02 10:48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⑭ 직접 겪은 곽응호·천억실 씨

"첫겨울 못 넘기고 많은 사람 죽어" "카자흐 사람 도움 많이 받아"

"서울올림픽 전엔 한국 잘사는 줄 몰라" "남북통일 보는 게 소원"

(우슈토베<카자흐스탄>=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37년 소련 연해주에서 강제로 끌려온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처음 토굴을 파고 살았던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의 바슈토베 마을.

현지 시간으로 1일 오후 이곳에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회상열차' 탐방단이 주최한 '고려인 강제이주 희생자 진혼제'에서는 80년 전 고난의 길을 떠났던 경험자 2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차림으로 마이크를 잡은 곽응호(곽 미하일 니콜라예비치·95) 씨는 그때의 일이 머리에 떠오르는 듯 비감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때가 15살이었습니다. 우리 생김새가 일본인과 비슷해 간첩 활동을 할지 모른다는 핑계를 만들어 연해주에서 쫓아냈죠. 한 달여 동안 기차 짐칸에 타고 왔습니다. 소나 양 등 가축을 싣던 칸이었어요. 난로가 있어 난방도 하고 밥도 지어 먹었습니다. 늦가울에 도착해 토굴을 짓고 겨울을 났는데 봄이 오기 전에 많은 사람이 죽었죠.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먹을 것도 나눠주고 옷도 주는 등 많이 도와줬습니다. 지금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베이셈바예브 카이라트 아슈랄리예비치 카라탈군수 등의 도움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을 찾은 겁니다."

천억실(천 미하일 다니옐로비치·92) 씨는 "열차 안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면 역에 설 때마다 소련 경찰들이 시체를 버렸는데 어디에 묻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우울한 표정을 짓다가도 "모국에서 온 형제자매들을 보니 정말 반갑고 기분이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비교적 또렷한 발음으로 한국말을 구사하긴 했으나 어휘는 많이 잊어버렸는지 러시아어를 자주 섞어 쓰고, 한국 기자들의 질문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곽 씨는 부친의 고향이 평양이라고 소개했다. 1941년부터 1946년까지 소련군에서 복무했는데 전투에 참전하지는 않았고 각종 건설 현장과 생산 현장에 투입돼 일했다고 한다. 가슴에 달린 훈장은 그때 받은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는데 아는 것이 많아 이웃으로부터 '곽 선생'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아버지 피를 물려받은 덕인지 37년 동안 군청에서 일했다고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그는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TV 등으로도 자주 봤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기회가 닿지 않아 못 가봤습니다. 한국의 무역 규모가 전 세계 10위권에 들 만큼 잘사는 나라가 됐다니 얼마나 기쁘고 뿌듯한지 모르겠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데 이젠 그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천 씨는 아버지한테서 고향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언제 어떻게 두만강을 건너와 연해주에 살게 됐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는 "당시 국경을 넘는 게 불법이어서 주변에 숨기려고 말씀을 안 해주신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는 강제이주 60주년을 맞아 1997년 6월 한-카자흐스탄친선협회가 카자흐스탄 고려인 35명을 초청했을 때 방한단에 포함돼 모국 땅을 처음 밟았다. 궁궐과 시장 등 서울의 명소를 둘러보고 높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1988년 이전에는 한국이 잘사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죠. 교류도 전혀 없고 언론에도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서울올림픽 때 TV에 비친 모습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죠. 초현대식 빌딩이 즐비하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활기가 넘치더군요."

두 노인은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여한이 없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남북 분단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고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우호 협력을 강조했다.

"민족이 둘로 갈라져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남북한이 쪼개지지 않았다면 우리도 부모의 고향을 찾기가 훨씬 쉬웠을 겁니다. 한반도가 통일돼 온 민족이 단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천억실 씨)

"80년 전 이곳으로 이주해 지금까지 카자흐스탄 사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이 1992년 국교를 맺은 이래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두 나라 사이가 더 가까워지고 양국 국민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곽응호 씨)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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