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배아 유전자교정 성공' 또다른 숙제를 던지다

입력 2017-08-02 16:07
수정 2017-08-03 07:49
'인간배아 유전자교정 성공' 또다른 숙제를 던지다

선진국 유전자교정 연구 부분 허용속 한국은 손 묶여

'맞춤형 아기' 현실화 가능성에 생명윤리 논란도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과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OHSU) 등이 3일(한국시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유전질환 유전자 교정 연구를 계기로 국내외의 이 분야 연구 허용 현황이 관심을 끈다.

국내에서는 생명윤리법에 따라 인간 배아의 유전체 교정이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연구의 배아 실험은 현지 규정에 따라 미국 연구진이 진행했다.

한국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를 제작하고 디옥시리보핵산(DNA) 분석을 통해 교정의 정확도를 분석하는 작업을 맡았다. 인간 배아 자체가 아니라 DNA 분석을 한 것이므로 한국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 연구진의 설명이다.



◇ '맞춤형 아기' 등 윤리적 문제 우려

인간 배아의 실험 활용이나 유전자 편집 문제는 안전성·유효성 등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맞춤형 아기'라는 말로 대표되는 윤리적·종교적 문제도 얽혀 있어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다.

'맞춤형 아기'란 인공수정 기술과 유전자 감별을 통해 특정한 유전적 특질을 가진 배아만 골라서 아기로 탄생시킨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지능, 체력, 체격, 피부 색깔 등을 골라서 낳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희귀 혈액질환이나 암 등 난치병을 앓는 자녀를 치료하는 데 이용할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도록, 또 다른 자녀를 '맞춤형 아기'로 가지려는 부모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런 얘기는 지금 단계에서는 현실과 거리가 먼 상상에 불과하다. 유전병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 변이가 알려진 것과 달리, 지능·체력·체격 등은 매우 많은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관여하며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다. 또 난치병의 줄기세포 치료도 아직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며 실용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이나 학술지들은 '맞춤형 아기'에 대한 언급을 매우 꺼리는 경향이 있다. 자극적인 상상과 공포로 불필요한 시비를 일으켜 윤리 문제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오히려 어려워진다는 이유다.

그러나 가톨릭이나 보수적 개신교계 등에서는 앞으로 기술이 발달할 경우 '맞춤형 아기'등 비윤리적 행태가 만연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며 배아의 유전자 편집 연구 자체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 생명윤리법 과잉규제 논란…선진국은 부분 허용 추세

우리나라의 현행 생명윤리법 등 관련 법령들은 배아·난자·정자·태아에 대한 유전자 교정 치료를 금지하고 있으며, 대통령령이 정하는 희귀·난치병 치료 등 일부 조건을 만족할 경우에 한해 인공수정을 하고 남은 '잔여 배아'를 이용한 '연구'만 허용하고 있다. 규제 완화 의견이 있어 의견 수렴이 이뤄지고 있으나 전망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이 기술의 임상 적용은 시기상조라고 보아 규제하되, 기초연구나 이를 위한 임상실험은 허용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서서히 완화할 필요성을 논의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올해 2월 국립과학원(NAS)과 국립의학원(NAM)이 내놓았다.

관련 기술이 매우 빨리 발전하고 있어 초기 배아, 난자, 정자, 전구세포(precursor cell) 등에 대한 유전자 편집이 장래에 '심각한 고려를 할만한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며 "주의를 갖고 접근해야만 하지만, 주의가 금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청(USFDA)은 '인간 배아가 유전 가능한 유전적 변형을 포함하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변경되는 연구'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 연방 자금을 쓸 수 없도록 했다.

즉 지금 제도로는 FDA 검토나 승인을 받을 수 없으므로 유전자 편집 치료의 임상시험을 하는 것은 미국에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전적 난치병 치료에 대한 기초연구를 위해 실험실에서 인간배아와 생식세포를 변경하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 이번 연구 중 OHSU 연구팀이 미국에서 한 배아 이용 연구가 그 예다. OHSU 연구팀은 기관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나, 정부의 승인은 필요가 없었다.

NAS와 NAM은 '엄격한 감독을 받는다는 전제 하에' 심각한 유전질환 치료를 위해 유전자를 편집하는 임상시험도 '언젠가는' 허용될 수 있으리라는 견해도 내놨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USFDA의 금지 규정을 바꿔야 한다.

영국의 경우 작년 2월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체 교정 연구를 처음으로 허용했다. 이에 따라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캐시 니아칸 박사 연구팀이 연구에 착수했다.

중국은 특별한 규제 없이 인간 배아 유전체 교정 연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중이다. 중국 중산대학은 2015년 4월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의 유전체를 교정했다는 논문을 학술지 '프로틴 앤드 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외에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불임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을 연구하기 위해 인간 배아 대상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는 연구의 승인을 받았으며, 일본도 작년에 기초 연구에 한해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을 허용키로 결정했다.



◇ 유전자 가위 세포치료 임상연구도 활발

이와 별도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세포치료 등의 임상적 연구도 여러 나라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작년 6월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연구를 하겠다는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의 계획을 승인했다. 또 중국에서는 작년 8월 폐암 환자에게 암세포 공격 능력을 높인 면역세포를 주입하는 방식의 유전자 가위 활용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이번 네이처 논문의 공동교신저자 5인에 포함된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겸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현재 유전자 가위 임상연구는 미국 9건, 중국 5건, 영국 3건이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solatid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