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뇌졸중 20%는 '심방세동' 탓…"나이들수록 위험↑"
약물로 심방세동 조절 안 되면 '전극도자절제술' 고려해야
(서울=연합뉴스) 김 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 = #. 경기도 과천에 사는 김모(72) 할머니는 지난봄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팔다리에 마비증상이 생겨 응급실을 찾았다. 진단결과는 뇌경색이었다. 김 할머니에게 약물치료를 하고, 뇌경색의 원인을 찾던 중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김 할머니는 평소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해 한 번도 심전도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우선 뇌경색 치료를 한 뒤 심방세동을 조절하기 위해 약물치료를 했지만, 잘 조절되지 않았다. 결국 '전극도자절제술' 치료를 시도했다. 전극도자절제술은 혈관을 통해 전극 카테터를 심장 위치까지 넣은 후 부정맥이 발생하는 심장 내 부위를 고주파로 절제 또는 괴사시키는 시술이다. 김 할머니는 이 치료 후 지금까지 심방세동 없이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부정맥은 심장박동이 너무 늦거나, 빠르거나, 규칙적이지 않은 경우를 통칭한다. 심장박동은 심장의 윗부분인 심방에서 분당 60∼100회로 일정하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게 정상이 아닌 상태라고 보면 된다.
부정맥 중에서도 가장 흔한 것은 심방세동으로, 심방의 각 부분이 무질서하고 가늘게 떨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보통은 맥박수가 분당 80∼150회 정도로 빠르고 불규칙한 상태를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 증상은 여러 가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적절히 치료해야 한다.
◇ 나이 들수록 증가하는 심방세동…정확한 원인 찾아야
대부분의 심방세동은 고혈압, 심장판막질환, 관상동맥질환, 심부전증 등의 기질적인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에게서 잘 발생한다. 또 심장의 근육이 크고 두꺼워지는 비후성·확장성 심근병증도 발생 원인 중 하나다. 그 외에 갑상선 기능항진증이나 만성 폐질환과 동반하기도 하고, 원인 질환 없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심방세동 유병률은 60대 1∼2%, 70대 5%, 80대 15% 등으로 나이가 들수록 증가한다.
심방세동의 증상은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서부터 두근거림, 흉통, 호흡곤란, 실신까지 다양하다. 이런 증상은 음주 후 당일 저녁 혹은 다음 날에 자주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만성 심방세동의 경우는 심장이 수축과 확장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활동을 체크하는 심전도 검사로 쉽게 진단된다.
하지만 발작성 심방세동은 그 순간을 포착하지 못한 경우 진단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심방세동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병원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만약 증상이 잠깐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면 하루 또는 1주일에 걸쳐 심전도를 모니터링하는 검사를 해야 한다.
◇ 뇌졸중 20%는 심방세동이 원인…심장병 사망률도 2배↑
증상이 없는 심방세동일지라도 지속적으로 빠른 심박동수가 심장에 부담을 줘 심장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심장기능이 저하되면 연쇄적으로 심방세동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심방이 정상적으로 수축하지 못하고 떨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심방 안에 혈전(피 찌꺼기)이 잘 생긴다.
이 혈전의 일부가 떨어져 동맥을 타고 나가 뇌혈관을 막으면 뇌졸중이 발생하고, 다른 부위의 동맥혈관을 막으면 그 위치에 따라 복통, 옆구리 통증, 하지 통증 등의 여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뇌졸중(중풍)의 약 20% 정도는 심방세동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심방세동 환자 중 위험군에는 피를 정상보다 묽게 만드는 와파린이나 신경구항응고제 등의 혈전방지제를 함께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방세동 환자는 여러 가지 합병증 때문에 정상인보다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2배 정도 높은 만큼 방치하지 말고,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고혈압, 65세 이상, 심부전, 심근경색 병력이 있었던 경우는 뇌졸중 발병 위험이 커 항혈전치료가 필요하다. 이미 뇌졸중을 겪었던 경우도 재발을 막는 차원에서 항혈전치료를 해야 한다.
뇌졸중 위험이 큰 경우라면 신경구항응고제(NOAC)를 사용해 예전에 사용하던 와파린과 유사한 뇌졸중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만약 뇌졸중 위험인자가 없는 60세 미만의 환자라면 항혈전치료는 필요하지 않다. 다만 승모판 협착증 같은 판막질환이 있거나 판막치환술을 받은 환자라면 항혈전치료가 필요하다.
◇ 항부정맥제로 조절 안 되면 '전극도자절제술' 고려해야
항부정맥제를 사용하면 심방세동을 정상 맥박으로 되돌릴 수 있지만, 효과는 환자에 따라 다르다. 소량의 항부정맥제에도 심방세동이 조절이 잘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일부 환자는 기저 질환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항부정맥제가 한두 가지로 제한된다. 항부정맥제를 장기간 사용함으로써 전신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항부정맥제를 쓸 때는 부정맥의 조절뿐만 아니라 항부정맥제의 부작용 여부에 대한 주기적인 검사가 필수적이다. 진료실에서는 늘 정상 맥박인 것처럼 보여도 발작성 심방세동이 재발할 수 있으며 항부정맥제를 사용하는 도중에 무증상의 심방세동이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앞선 김 할머니의 사례처럼 항부정맥제를 적절하게 사용해도 심방세동이 조절되지 않거나 항부정맥제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전극도자절제술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이다. 이 치료법은 '3차원 영상 지도화 시스템'과 카테터의 발전으로 시술 시간이 단축된 것은 물론 심방세동 재발률이 20% 이하로 떨어져 합병증이 확연히 줄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요즘은 전극도자절제술이 안전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시술로 발전하고 있다. 발작성 심방세동뿐만 아니라 지속성 심방세동 환자에게서도 시행될 수 있으며 시술 이후 심방세동으로 인한 증상이 없어지고 심장기능이 개선되는 효과가 뚜렷하다.
심방세동과 같은 부정맥을 예방하려면 금주와 함께 적절한 운동도 필수다.
평소 비만을 예방하고, 과체중이나 비만이라면 몸무게를 줄이는 게 좋다. 또 고혈압 환자는 개인별 상태에 맞는 항고혈압제로 치료를 꾸준히 받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항상 담당의사와 상의해 부정맥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김 준 교수는 1996년 울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심장학회, 대한부정맥학회 정회원이다. 부정맥과 관련된 논문 67편을 집필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에서 부정맥 환자를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다. 심장병원 내 심방세동센터에서는 최신 3차원 검사기기와 냉각도자절제 장치 등의 최첨단 진단·치료장비를 갖추고 심방세동 환자의 특성에 맞는 환자별 맞춤 치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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