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흠뻑 취한 3일…'지산 밸리록' 막 내려

입력 2017-07-31 00:02
수정 2017-07-31 11:21
음악에 흠뻑 취한 3일…'지산 밸리록' 막 내려

고릴라즈, 혁신적인 음악과 세련된 영상미 '명불허전'

"록 스피릿은 어디로" vs "다양한 음악 좋았다" 이견



(이천=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한국을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인 '2017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밸리록)이 30일 사흘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았지만 관객들은 춤을 추고 맥주를 즐기며 음악의 향연을 만끽했다.

다만, EDM(일렉트로닉댄스뮤직)과 힙합 뮤지션들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록 페스티벌의 정체성 논란이 계속됐다. 여전히 북적이긴 했지만, 지난해 사흘간 9만 명이 몰린 것에 견줘 상대적으로 한산했던 공연장은 주최 측을 한숨짓게 했다.

◇ 즐긴다는 건 이런 것…최고의 매너 래드윔프스·자우림

관객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뮤지션은 일본 록밴드 래드윔프스였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로 깊은 인상을 남긴 래드윔프스는 '너의 이름은'과 '전전전세'(前前前世)로 화려한 등장을 알렸다.

기타리스트 구와하라 아키라는 개구쟁이같이 웃으며 유창한 한국어로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본에서 왔어요", "여러분 신나요? 나는 진짜 신나고 재미있어요", "한국 최고! 한국 팬들을 좋아해요"라고 인사했다. 관객들은 환호와 '떼창'으로 화답했다.

화려한 기타와 베이스 연주에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고, 공연 시작 30여 분이 지나 '다다'(DADA)를 연주할 때 절정에 이르렀다. 조금씩 비가 내렸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하늘로 물총을 쏘며 축제를 즐겼다. 전날 밸리록 무대에 오른 국내 밴드 칵스가 관객들과 함께 잔디밭에서 열광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보컬 노다 요지로는 마지막 곡으로 '세뇌'(洗腦)와 '이인데스카'(いいんですか)를 부른 뒤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다시 만나요! 한국엔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자우림은 지칠 줄 모르고 내달렸다. 김윤아는 공연 전 트위터에 '오늘 지산의 바닥 상태는 어떻습니까? 진흙이 아직도 있습니까?'라고 써 잠시도 앉을 새 없는 뜨거운 무대를 예고했다.

새빨간 입술에 짙은 화장을 한 채 등장한 김윤아는 "반갑다. 무대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차원이 다르다"라고 소리 질렀고, 관객들은 비명에 가까운 환호로 호응했다.

기타리스트 이선규는 "자우림이 올해로 만 스무 살이 됐다. 여기 1997년생 있느냐"며 농담을 던졌고, 베이시스트 김진만은 감격에 찬 얼굴로 "너희 보면 내가 늙지를 않는다"며 거들었다.

노래방의 '국민 애창곡'인 '매직 카펫 라이드'에 이어 '하하하쏭', '고래사냥'까지 히트곡을 부르자 관객들은 열광했다.

◇ 고릴라즈 등장에 거대한 공연장이 클럽으로

대미를 장식한 팀은 영국 밴드 블러의 리더인 데이먼 알반과 만화가 제이미 휴렛이 만든 가상의 4인조 혼성그룹 고릴라즈였다.

제이미 휴렛은 지난 28일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 2017'을 마친 뒤 컨디션 난조로 한국에 오지 못했지만, 데이먼 알반이 화려한 무대 매너로 빈자리를 채웠다. 고릴라즈는 강남 봉은사를 방문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고릴라즈가 선보인 '어센션'(Ascension)과 '새턴즈 바즈'(Saturnz Barz), '슬리핑 파우더'(Sleeping powder) 등의 연주는 세련된 영상과 함께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데이먼 알반은 두 차례 이상 관객 속으로 들어가 노래하는가 하면, 직접 멜로디언과 피아노를 연주하고 랩을 하는 등 끊임없이 변화했다.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등을 공연 중간중간 소리치고 객석으로 내려가 '셀카'에 기꺼이 응하기도 했다. 경호원이 난색을 표해도 거듭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무대 안팎을 종횡무진 했다.

훌륭한 공연을 만든 데는 음악 팬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래드윔프스, 자우림의 공연에서 훌륭한 관객으로서 호응했다면, 고릴라즈의 무대에선 신명 나게 춤을 추며 공연장을 거대한 클럽으로 만들었다.

데이먼 알반이 서정적인 멜로디의 '버스티드 앤드 블루'(Busted and blue)를 부를 땐 휴대전화 불빛을 흔들며 장관을 연출했다.



◇ 밸리록은 변신 중…록 스피릿 고수? 장르 다변화?

밸리록은 지난해부터 장르의 폭을 넓히며 타이틀에 '뮤직'이란 단어를 끼워 넣었다.

지난해 DJ 제드에 이어 올해도 메이저 레이저가 헤드라이너로 섰고, 래퍼 지코와 R&B 가수 딘, 이하이 등 록 장르가 아닌 뮤지션들이 초대됐다. '록 스피릿'을 지지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페스티벌이 정체성을 잃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관객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직장인 박주희(31) 씨는 "일렉트로니카 밴드 글렌체크를 보러 왔다"면서 "록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학생 박 모(24) 씨도 "첫날 메이저 레이저의 디플로가 반가웠다. 과거처럼 밸리록에 정통 록만 있었다면 안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장인 김 모(30) 씨는 "대중이 조금씩 록을 외면하는 점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밸리록마저 정통 록을 추구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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