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톡톡] '청와대 컬렉션' 혹은 '청와대 미술관'

입력 2017-08-05 08:25
[사진톡톡] '청와대 컬렉션' 혹은 '청와대 미술관'

청와대가 보유한 주요 그림을 살펴봅니다.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청와대에는 많은 방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자기 집을 인테리어 하듯이 청와대도 그림이나 공예품, 가구 등으로 방을 장식하며, 조명을 바꾸기도 하고 간혹 도배도 새롭게 합니다.

'정부미술품관리규정'에 따르면 각 국가기관은 한국화, 서양화, 판화, 서예, 조각, 도자기, 공예품을 소유하거나 대여할 수 있습니다.



세부 규정에 따라 청와대가 구매해 소유한 미술품은 이른바 '청와대 컬렉션'으로 부릅니다. 이 미술품은 조달청에 통보해야 합니다.

현재 청와대는 5백여 점 이상의 미술품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청와대 내에 걸려 있는 미술품, 그 중 그림입니다.

'청와대 컬렉션'의 대표 작품은 국무회의가 열리는 세종실 앞에 걸려 있는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일 겁니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과 관저가 완공된 것은 1990년 노태우 정부 때입니다.

이후 미술품 수요가 많아졌습니다. 역대 정부는 대통령 취향이나 정부의 성격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보이면서 다양한 미술품을 구매했습니다.

먼저 아래의 사진을 보시죠. 노태우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모습입니다.



노 대통령 뒤로 걸려 있는 작품이 '일월도', 혹은 '일월곤륜도', '일월오봉도'라고 부르는 민화입니다. 해와 달이 함께 떠 있고 두 줄기 폭포가 흐르는 다섯 봉우리의 산과 소나무가 그려진 그림입니다.

조선 시대 왕의 뒤편에는 항상 일월도 그림이나 병풍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1만 원권 지폐가 있으면 꺼내보세요. 세종대왕 뒤로 펼쳐져 있는 바로 그 그림입니다. 한마디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민주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문민정부 시절에는 숨어버렸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김영삼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장 뒤로는 대형커튼만 보입니다.



그 자리에 김대중 대통령 말기부터 다른 그림이 등장합니다. 박영율 작가의 '일자곡선(一字曲線)'이라는 작품입니다. 굽은 듯하면서도 힘차게 뻗은 큰 소나무가 전 국무위원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01년 10월부터 걸리기 시작해 참여정부 때 계속 같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명박 정부 임기 첫해에도 있었으나, 대통령 착석 위치부터 회의장 배치가 대폭 바뀌면서 그 자리에는 다시 커튼이 드리워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월도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6월 21일, '일자리위원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세종실에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이 커튼에 가려진 이 그림을 드러내 보이며 "좋은 그림인데 커튼이 덮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습니다.

그 뒤 이 그림은 다시 전체 모습을 당당히 드러냈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 있던 일자곡선은 또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지네요.



아래의 그림도 인상적입니다.

참여정부 초기, 접견실의 한쪽 벽에 걸려 있던 작품으로 제주 출신 민중 작가인 강요배가 그린 '적송(赤松)'입니다.



참여정부는 이전 정부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민중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해 전시했는데 '적송'이 그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일부 미술품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선정했다고 합니다.

'청와대 컬렉션' 중 가장 자주 볼 수 있고, 제일 사랑받는 작품은 바로 아래 작품입니다. 김학수 화백이 1977년 완성한 151*305.5cm 크기의 대형 수묵담채 '능행도(陵幸圖)'입니다.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가 수원 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입니다. 1795년 2월 초(윤달)의 행사입니다.

당시 행사의 전말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그려진 '반차도(班次圖)'를 보면 총인원이 1,779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김 화백이 대형 작품으로 재현한 것입니다.

행사의 목적은 수원 화성에서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고 부친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을 참배하는 일이었으나, 이 이례적인 행차는 정조가 추구한 '조선의 개혁'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래의 사진도 흥미롭습니다. 2014년 11월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 대사 일행이 신임장 제정식을 위해 청와대를 찾은 날, 대통령을 기다리며 능행도를 감상하는 모습입니다.



능행도는 외국 정상이나 귀빈들 접견이 주로 이뤄지는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 걸려 있어, 이 방을 방문하는 외국 수행원이나 기자들에게도 매우 주목도가 높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항상 이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한 현대 화가의 비구상 작품으로 교체돼 몇 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으나, 박근혜 정부 중반 때인 2014년 다시 등장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은 듯 이 작품에 더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능행도는 언제부터인가 '전설'을 하나 얻게 됩니다. 그림 속에는 일곱 마리의 개가 그려져 있으나 그 모습을 다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일곱 '누렁이'를 모두 찾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하나 찾아옵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접견실 행사 시작에 앞서 약간의 시간이 나면 수행원과 기자들은 개를 찾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정조의 꿈은 미완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꿈을 잊지 않는다면 장엄한 행렬이 부활할지도 모릅니다. 전설은 '누렁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청와대 컬렉션'은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구설수와 의혹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역대 정부마다 미술품 보유 현황이나 명세 등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컬렉션'이 '청와대 미술관'으로 변신할 날을 기다립니다. 보유한 작품을 책자나 팸플릿으로 꼼꼼히 만날 수 있는 '지상(紙上) 미술관'이라도 좋습니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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