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美외교관 무더기 추방·자산동결…대러 추가제재 추진 보복
"美 공관직원 455명으로 줄이라" 명령…美 별장·창고시설 등도 압류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미국 의회가 북한·이란·러시아에 대한 제재 법안을 패키지로 일괄 채택하면서 대러 추가 제재를 추진하는 데 대해 러시아가 강력한 보복에 나섰다.
러시아 외무부는 2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 하원과 상원이 대러 추가 제재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이는 국제 문제에서 미국의 극단적 공격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것이다. 미국이 오만하게 다른 나라의 입장과 이익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자국 주재 미국 공관 직원추방, 미국 외교 자산 압류 등의 보복 조치를 발표했다.
외무부는 "미국 측에 오는 9월 1일까지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예카테린부르크·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일하는 외교관 및 기술 요원 수를 미국에 주재하는 러시아 외교관 및 기술요원 수와 정확히 맞출 것을 제안한다"면서 "이는 러시아 내 미국 외교 공관 직원 수가 455명으로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형식상 제안이지만 사실상 미국 외교관에 대한 추방 명령이었다.
정확히 몇 명의 미 공관직원이 러시아를 떠나야 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수백명이 추방 대상이라고 전했다.
외무부는 이어 "다음달 1일부터 미국 대사관이 모스크바 남쪽 '도로즈나야' 거리에 있는 창고 시설과 모스크바 북서쪽 (자연공원) '세레브랸니 보르' 내에 있는 별장을 사용하는 것을 잠정 중지한다"고 밝혔다.
미국 외교자산에 대한 압류 선언이었다.
외무부는 이같은 대미 제재 조치를 취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미국이 러시아가 자국 내정에 간섭했다는 완전히 꾸며낸 명분을 내세워 지속해서 심각한 반러 조치들을 연이어 취하고 있다"면서 "이 모든 것은 국제법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며 유엔 헌장,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은 물론 문명화된 국제교류의 기본적 기준에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새로운 (대러) 제재 법률 채택은 미국 내 정쟁에서 미-러 관계가 볼모가 됐음을 명백히 보여줬다"면서 "또 새 법률은 정치적 기재를 이용해 국제경제에서 미국의 비양심적 경쟁우위를 보장해주기 위한 목적을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핀란드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전날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러 제재는 국제법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한 불법이며 국제 통상 원칙과 국제통상조직의 규정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우리에 대한 무례한 행동을 끝없이 참을 수는 없다"고 보복 조치를 예고했었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 측은 러시아 외무부 발표와 관련 "존 테프트 대사가 강한 실망과 항의의 뜻을 밝혔다"면서 "러시아 측의 통보를 워싱턴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미국 하원은 앞서 25일 북한·이란·러시아에 대한 제재 법안을 일괄 처리하면서 대러 추가 제재를 승인했고, 27일에는 미 상원이 해당 법안을 가결했다.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을 응징하기 위해 취했던 기존 대러 제재를 한층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대러 추가 제재안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 지원 등 기존 사건에 더해 지난해 '미국 대선개입 해킹' 사건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추가했다. 주로 러시아 에너지 기업의 미국 및 유럽 내 석유·가스 프로젝트를 겨냥했다.
상하원을 통과한 북한·이란·러시아 일괄 제재 법안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최종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다.
트럼프가 제재안에 최종 서명할 경우 러시아는 추가 보복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맞제재는 지난해 말 미국이 취한 러시아 외교관 무더기 추방에 대한 보복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前) 미국 대통령은 재임 말기인 지난해 12월 말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민주당 측 인사들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는 정보와 관련 자국에 주재하던 러시아 외교관 35명 추방, 미국 내 러시아 공관 시설 2곳 폐쇄 등의 제재를 가한 바 있다.
미국의 조치에 러시아도 즉각 응수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의외로 보복 제재를 단행하지 않고 미뤄 왔다.
cjyou@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