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전통'을 관통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헌신뿐"
'러시아 전설'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평창대관령음악제 첫 방문
(평창=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72년 동안 멤버들이 교체되기도, 여러 굴곡을 겪기도 했죠.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절대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음악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태도, 음악에 대한 헌신입니다."
28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만난 러시아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72년간의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처럼 답했다.
1945년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들이 처음 결성한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은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가장 오래된 현악사중주단 중 하나로 꼽힌다.
러시아 대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모든 사중주곡을 발표하기 전 이들에게 미리 비공개 초연을 부탁했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물론 창단 멤버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 창단 멤버 중 한 명인 첼리스트 발렌틴 벌린스키가 2007년 블라디미르 발신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면서 모든 포지션에 2세대 혹은 3세대 연주자들이 배치됐다. 현재 멤버는 발신을 비롯해 루벤 아하로니안·세르게이 로모프스키(바이올린), 이고리 나이딘(비올라) 등 네 명으로 구성돼있다.
이날 인터뷰에 참석한 나이딘과 발신은 각각 1996년, 2007년부터 이 단체에서 활동해왔다. 이들 역시 모두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의 정통 러시아 연주자들이다.
이들은 "연주자들이 2세대, 3세대로 넘어왔기 때문에 사운드에도 당연히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최대한 우리 단체만의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꼽은 이 단체만의 특별한 전통은 "연습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많이 하는 것"이다.
"'1주에 몇 번', '1회 연습 시간은 몇 시간' 등과 같은 조건을 두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일지도, 여건이 그리 좋지 않더라도 최대한 모여 끊임없이 맞춰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카네기홀에서든, 작은 음악학교에서든 최선의 연주를 펼치는 것도 '보로딘'만의 디엔에이(DNA)라고 생각합니다."(발신)
현악사중주단은 묘한 서열 구분과 음악적 견해 차이 등으로 때때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 때문에 중간에 단체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잦다.
그러나 이들은 "현악사중주란 장르와 음악 자체에 헌신하는 마음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개인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음악 이외의 다른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는 순간 그 단체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이들의 사운드는 짙고 고전적이었던 원년 멤버에 비해 부드럽고 섬세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이들은 "때로는 정반대의 평가를 듣기도 한다"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평가'보다는 관객에게 다가가는 '음악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과거 내한 경험이 있지만, 평창대관령음악제 무대에는 처음 서게 됐다. 특히 올해 음악제 주제가 '러시아'라는 점에서 '러시아 실내악단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이들의 내한은 더 뜻깊다.
이들이 생각하는 러시아 음악의 특징은 무엇일까.
"러시아 음악은 물론 열정적이고 다이내믹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선율과 서정성 없이는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다만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차이콥스키, 무소르그스키 등 작곡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과 개성이 너무도 분명해서 러시아 음악을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발신)
보로딘 4중주단은 7월 27일에 이어 29일, 8월 3일에 베토벤·쇼스타코비치·하이든 등의 현악사중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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