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초반부터 공정성 흔들린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서울=연합뉴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를 놓고 공론화위원회가 정부와 다른 입장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는 27일 2차 회의 브리핑에서 "우리는 공론조사 방식을 따를 것이며 조사 대상자들이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권고사항 정도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론화위는 "1차 조사 후 표본을 추출해 2차 조사를 하고, 숙의 과정을 거쳐 3차 조사를 하겠다"면서 "그 내용을 정부에 권고해 대통령 등 결정권자의 최종 결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나흘 전 이 위원회의 출범에 즈음해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공론화위가 구성할 시민배심원단이 내리는 결정을 그대로 정책에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공론화위가 공론조사 과정을 거쳐 구성할 시민배심원단에서 3개월 안에 신고리 5.6호기 공사의 영구 중단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기존 정부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공론화위는 이날 브리핑 후 논란이 일자 "위원회의 최종 결정이 아니며, 회의에서 전문가가 말한 건데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공론화위 내부에 정부 방침 대로 하지 않으려는 기류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논란이 불거지자 청와대가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초창기라 이제 공론화위의 성격과 역할을 규정해야 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공론화위에서 찬반 결정을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론화위의 최종 목표는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나게 하는 것"이라면서 "지금은 공론화위가 룰 세팅을 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측이 공론화위의 역할을 분명히 재규정한 것은, 전날 공론화위 브리핑으로 생긴 혼선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런데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청와대가 개입하는 인상을 줌으로써 공론화위의 독립성에 흠집을 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론화위 운영의 독립성이 흔들리면 가장 중요한 요건인 공정성은 물론이고 최종적 결과에 대한 신뢰성까지 떨어지기 쉽다. 출발하기 전에도 말이 많았던 공론화위가 초반부터 안팎의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 같아 착잡하다.
서둘러 구성한 공론화위지만 꼭 필요한 준비는 빈틈없이 해야 했다. 더구나 국가 백년대계인 에너지 정책의 큰 방향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위원회가 아닌가. 겨우 두 번 회의하고 이렇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으니 '졸속'이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당장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결국 문 대통령의 의중대로 최종 결정이 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론화위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보 야당인 국민의당도 "공론화위는 공사중단 결정을 위해 국민을 볼모로 삼는 면피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와 여당은 공론화위의 이번 '너무 나간' 브리핑을 일과성 해프닝으로 넘기려는 것 같다. 사실 공론화위는 '숙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국가적 난제를 풀어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를 우회해 공론화위 같은 민간기구를 가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모험이다. 거듭 말하지만 과정의 공정성이 철저히 담보되지 않으면 이런 숙의 민주주의 방식은 작동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공론화의 이번 이견 노출은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공론화위가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의구심을 갖도록 했다. 공론화위가 이번에 입은 내상을 이겨내고 외견상이나마 정상궤도를 지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결론을 내든 그 결과가 더 큰 갈등과 논란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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