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장' 권세 떨친 김기춘, '국정농단' 범죄자로 추락

입력 2017-07-27 15:52
수정 2017-07-27 17:01
'왕실장' 권세 떨친 김기춘, '국정농단' 범죄자로 추락

법원 "법치주의 수호·적법절차 준수 대신 블랙리스트 지시·책임 회피"

'스타장관' 출신 조윤선은 '위증' 유죄…집행유예 석방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박근혜 정부에서 '왕(王)실장'으로 권세를 떨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27일 유죄 판결을 받고 3년간 수감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됐다.

수감생활로 지병인 심장병 등 건강이 악화한 그는 "옥사만은 피하고 싶다"고 재판부에 호소했지만, 선고 결과는 그의 바람을 비껴갔다.

지난 정부에서 대통령에게 가장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김 전 비서실장은 박 전 대통령 집안과 2대에 걸쳐 인연을 맺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1970년대 초 법무부 검사로 재직하며 유신헌법의 초안을 만드는 실무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에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의 중책을 맡아 국정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러나 민주화·다양화한 시대 흐름과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해 국민과의 교감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통' 논란이 이어진 끝에 대통령 파면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연결되면서 최고 권부 참모로서의 마지막 공직 업무는 불행하게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과는 국회의원 시절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청와대 2인자로 불리는 비서실장을 지내며 막강한 지위와 권한을 누렸다.

그는 법조인, 정치인으로도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만 20세에 고등고시 사법과에 최연소로 합격했고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정치권에서도 15∼17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는 법무부 장관이었던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부산지역 관계 기관장들을 식당에 불러 모아 '우리가 남이가'라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부정선거를 모의한 '초원복집 사건'으로 음모론이나 공작정치에 관여했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이후에는 '모르쇠' 입장을 견지하다 '법꾸라지(법률 + 미꾸라지)'라는 지탄을 받았다. 법정에서도 '비정상의 정상화' 논리를 앞세우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은 오랜 공직 경험을 가진 법조인이고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한 비서실장으로서 누구보다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할 임무가 있음에도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를 가장 정점에서 지시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수행계획을 수립하고 때로는 독려하기도 했으면서도 자신은 전혀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지 않았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며 "국회 국정조사를 저해하고 진실 발견에 대한 국민 기대를 외면했다"고 따끔한 지적을 내놓았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모른다고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지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돼 수감자 신세는 면했다.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직권남용 혐의 등도 무죄 판단을 받았다.

김 전 실장과 함께 구속기소 돼 6개월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다 이날 풀려난 그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거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정무수석으로 발탁돼 청와대 '유리 천장'을 깨는 등 박근혜 정부 최고의 '실세 장관'으로 불렸다.

지난해 4·20 총선 때는 서울 서초갑에 출마하려다 공천을 받지 못해 국회의원 입문이 무산됐지만, 같은 해 8월 문체부 장관으로 발탁돼 '스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박 전 대통령이 당 비대위원장일 때부터 당선인 시절까지 대변인을 맡아 '신(新)친박'으로 불렸고, 장관 시절 대통령에게 문자로 TV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등 지근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 역시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블랙리스트 관련 인물로 지목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현직 장관 처음으로 특검에 구속되는 불명예를 떠안고 장관직에서도 물러났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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