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의 시대'에도 끊임없이 만나왔던 한국사회와 일본대중문화

입력 2017-07-27 11:43
'금지의 시대'에도 끊임없이 만나왔던 한국사회와 일본대중문화

신간 '일본을 금하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한국과 일본의 국교는 1965년 정상화됐지만 일본 대중문화는 1998년에야 개방됐다.

그러나 1998년 이전에도 일본 대중문화는 이미 비공식적으로 개방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TV에서는 버젓이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방송돼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의 한국어판인 '우주소년 아톰'은 1990년대 이전까지 많은 사람이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알고 있었고 아톰을 마스코트로 삼은 프로축구팀도 있을 정도였다.

일본 대중문화가 금지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침투했던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성민 일본 홋카이도대 교수는 신간 '일본을 禁(금)하다'(글항아리 펴냄)에서 일본 대중문화 금지를 흔히 생각하는 탈식민지화나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경계 같은 차원이 아닌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한다.

일본 대중문화 금지는 처음에는 탈식민지화를 위한 왜색(倭色) 척결 성격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양상은 복잡하게 전개됐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일본 대중문화와 일본 상품을 구분했다. 라디오에서 일본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금지되지만, 그 곡이 수록된 음반은 밀수돼 레코드 가게에서 판매되는 모순이 구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가 왜색풍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은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성격 전환에 있어 상징적인 사건으로 제시된다.

저자는 동백아가씨의 금지곡 지정이 당시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을 억제함과 동시에 정권이 가지고 있던 친일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실시된 상징조작 중 하나로 해석한다. 동시에 탈식민지화 작업이었던 금지가 이 시기부터는 '정치적 검열'의 성격을 이어받았다고 분석한다.

책은 또 한국의 탈일본화가 단순한 탈식민화 과정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일본 제국에서 미국 제국으로의 재편과정'을 통한 정치적, 문화적 동질화이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1980년대 텔레비전 방송은 일본 대중문화가 유입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방송국들은 일본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 일본어와 일본식 복장, 배경 등 왜색으로 보이는 요소를 제거하거나 감췄다. 이는 '금지'를 수행하는 방법이자 동시에 유입을 가능하게 했다.

책은 2014년 일본에서 '전후 한국과 일본문화-왜색 금지에서 한류까지'라는 제목으로 일본어로 출간된 것을 저자가 직접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아무리 힘을 들여 경계를 긋고 바깥의 존재를 '위험하고 불결한 것'으로 규정하고 공고한 방어 장치를 작동시켜도 어느새 뒤섞여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과 만나게 되는 그 과정이야말로 문화이며 삶의 방식"이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일본 대중문화 금지'라는 현상은 한국 대중문화의 형성 과정이자 경계를 사이에 둔 일본과의 문화적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사적 산물"이라고 말했다. 26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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