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수도'에 발 묶인 주민 목숨으로 돈벌이…탈출 브로커 활개
유엔 "IS 점령지역에 남은 민간인 최대 5만명"
탈출 주민 "브로커, 전장 한복판에 일행 버리고 달아나기도"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최후 거점 락까에 갇힌 민간인의 절박한 처지를 돈벌이에 악용하는 '탈출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다.
26일 AFP통신은 IS 수도격 도시 락까를 벗어나면서 브로커와 접촉한 주민들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미군 주도 IS 격퇴전의 지상군인 쿠르드·아랍연합 '시리아민주군'(SDF)은 현재 락까의 3분의 2 가량을 장악했다.
그러나 남아 있는 IS 구역에는 여전히 민간인 2만∼5만명이 발이 묶여 '인간방패'로 이용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IS 저격수와 지뢰 때문에 탈출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SDF 주둔 지역에 도착한 락까 난민 일부는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도시를 탈출할 수 있었다.
유엔에 따르면 탈출 브로커는 주민 1명당 7만5천∼15만시리아파운드(17만∼34만원)를 챙긴다.
브로커에게 돈을 지불해도 안전한 탈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락까 난민 알리(25)는 "브로커가 안전하다고 말한 곳에 도착한 순간 다에시(IS의 아랍어 약칭)의 총탄이 빗발쳤다"면서 "자동차 엔진에 총을 쏴서 주의를 분산시킨 후 가까스로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행 중 한 여성이 이 과정에서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아메드 알후세인(35)은 10만시리아파운드 상당을 브로커에게 지불하고 250명 규모 일행에 섞여 탈출길에 올랐다.
약 15시간 후 SDF 검문소에 근접했으나 교전이 벌어져 전장 한복판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결국 IS에 붙잡혀 인근 마을로 끌려간 후세인은 SDF가 마을을 점령하기까지 붙들려 있었다.
탈출 브로커들은 거짓말로 돈을 뜯어내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고 락까 난민들이 증언했다.
아부 아메드(38)는 "SDF 검문소를 찾아 사막을 헤매다 만난 브로커들이 탈출을 돕겠다며 돈을 요구했다"면서 "마침 한 양치기가 나타나 검문소가 5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알려줘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브로커는 가명을 쓰며 신분을 위장한다.
후세인은 "IS가 심문하며 브로커의 신원을 물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 답을 할 수가 없었다"면서 "브로커들이 사실은 IS 대원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락까 주민들은 IS의 공격뿐만 아니라 미군 주도 동맹군의 오폭 위험에도 시달린다.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락까는 조용히 학살당하고 있다'는 25일 밤(현지시간) 미군 주도 공습으로 락까에서 민간인 최소 18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달 17일 이라크·시리아 민간인 사상자를 집계하는 에어워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뒤 국제동맹군의 폭격 작전으로 사망한 민간인은 2천200여명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약 360명, 하루 평균으로 치면 12명꼴이다.
한편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 거주하는 데이비드 테일러는,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 소속으로 락까에서 싸우다 최근 전사한 미국인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25일(미국동부표준시) 확인했다.
한국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복무한 테일러는 아버지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YPG에 자원한 사실을 알리며 "저는 옳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쿠르드인의 자유를 위한 것이랍니다"라고 썼다.
앞서 이달 16일 YPG 매체는 미국인 자원병 테일러가 IS와 교전에서 전사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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