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후보 물색·언론통제·여론조작'…원세훈, 그의 민낯
"줘 패는 게 정보기관이 할 일"…"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 꽤 중요"
검찰, 국정원 내부 회의록 공개…내달 30일 파기환송심 선고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판에서 충격적인 내용의 국정원 내부 회의록을 공개했다.
그동안 국정원 부하 직원들에게 정치·선거 중립을 누차 강조해왔다는 원 전 원장 측 주장과 상충되는 내용이 가득 담겼다.
24일 공개된 이 회의록 곳곳에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을 보수 진영의 교두보이자 언론통제 기관, 여론조작 기관으로 만들어간 정황이 드러난다.
원 전 원장 사건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내달 30일 선고 공판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검찰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우선 2009년 6월19일자 부서장 회의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내년 11월 지자체 선거가 11개월 남았는데, 우리 지부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 후보들을 잘 검증해서 어떤 사람이 도움될지…"라고 말한다.
원 전 원장은 "본인들이 안 나간다고 해도 나가라고 해서 시의원, 구의원 나가고, 95년에도 시의원, 구청장도 본인이 원해서 민자당 후보로 나간 사람은 없고 국정원에서 다 나가라고 해서 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후 2011년 11월 18일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그해 치러진 10·26 재보선에서의 여당 참패를 안타까워하며 2012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에 대응하자는 취지로 언급한다.
그는 "선거 자체의 결과를 바꿀 수는 없는 것 아니에요. 내년도(2012년)에 큰 선거가 두 개나 있는데, 그 선거나 이런 걸 볼 때 정확한 사실, 그러니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해서 선거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우리 원이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여당의 재보선 참패를 거울삼아 총선과 대선에서는 국정원이 적극적인 여론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 전 원장은 같은 날 2012년 총선에 대비해 '인물 발굴 작업'에 나서라고도 지시한다.
그는 "인물도 여러 인물이 발굴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작년 선거도 보수가 결집하면 이길 교육감 선거도 분열 때문에 졌다. 지금부터 대비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신경 쓰자"고 주문한다.
특히 그는 "지금은 현 정부 대 비정부의 싸움이거든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12월부터는 예비(후보) 등록도 시작하지요? 그러니까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교통정리가 잘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챙겨줘요"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항상 '우리가 했다'고 확인 안 하면 확인 안 되도록, 꼬리를 안 잡히는 게 정보기관"이라며 보안 유지에도 각별히 신경 쓰라고 말한다.
원 전 원장이 언론통제를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그는 2009년 12월 18일 회의에서 보안 문제를 언급하며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 나가면 어떻게 죽이려는 걸 생각해야지, 기사가 났는데 다음 보도를 차단시키겠다?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부하들을 다그친다.
이어 "기사 나는 걸 미리 알고 기사를 못 나가게 하든지 안 그러면 기사 잘못 쓰고 그런 보도 매체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하든지, 그런 게 여러분이 할 일이지 이게 뭐냐"라고도 질책한다.
원 전 원장은 "잘못 할 때마다 줘 패는 게 정보기관이 할 일이지 그냥 가서 매달리고 어쩌고 하면 안 된다"고도 말한다.
2011년 11월 18일 회의에서도 원 전 원장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처리를 두고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이 우려되자 "지금부터 칼럼이고 신문 곳곳, 방송이고 어디고 가서 다 준비했다가 그날 '땅'하면 아침 신문 조간에 실리도록 준비하는 치밀함이 있어야 하는데 원장이 이야기 안 하면 생각을 안 하고 있잖아요"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뭐든지 선제 대응을 해야지, 하고 난 다음에 비난 기사 실리고, 양비론 비슷하게 해가지고 나오는 칼럼 몇 개 실려봐야 무슨 의미가 있어요. 미리 사설에도 쓰고 칼럼도 하나 실리고, 다음에 '잘했다'는 광고까지 들어가는 정도로 해서 국론분열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 전 원장은 부서장들을 모아 두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여론전도 강조했다.
2009년 12월 18일자 회의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심리전단 같은 데서 심리전도 하고 해서 좌파들이 국정을 발목 잡으려는 걸 차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2011년 11월18일 회의에선 "이제 온라인상에서의 대처도 대처고, 오프라인 쪽에서의 대처도 대처"라며 "지부장들께서 관계 단체나 중간지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산하 관계 단체와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 오찬 간담회라도 해라"라며 "시군별까지도 불러서 하든지 몇 개 모아서라도 자꾸 우리 우호세력을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정원이 국책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SNS상에서 '댓글 퍼 나르기'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도 눈에 띈다.
그는 이날 "(국책사업에 대해) 우리가 의견을 잠깐 붙여 놓으면 해명서가 된 상태에서 펴지는데, 한마디 말만 하면 누가 믿느냐. 국사편찬위원장이나 교과부 장관 명의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 우리가 실어 날라주라 이거야"라며 "그런 구체적인 방법도 생각하며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원 전 원장은 심리전단이 북한의 대남 선전 선동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강조해 왔지만 이 같은 자신의 주장을 뒤엎는 발언도 공개됐다.
원 전 원장은 2012년 4월20일 회의에 "심리전이라는 게 대북 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 꽤 중요해요"라고 강조한다.
국정원이 정부·여당의 우군 확보 차원에서 보수 단체 지원에 나섰다는 정황도 공개됐다.
2009년 6월19일자 회의록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보수 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원 문제도 다시 재검토하세요. 좌파 정권이 없어졌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으면 뭐야. 자유총연맹이라든가 이런 데는 다 사무실 제공해주고 그랬어요"라고 말한다.
같은 해 10월 회의에서도 "탈북자 단체를 만드는 데 있어 건전단체 먼저 만들어서 우리가 지원을 좀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국회나 노조 활동에 개입하려는 시도도 엿보였다.
2010년 3월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4월 국회 때는 지방행정구획 개편법이 확실히 정리되도록 해야 한다. 4월 국회에 안 되면 6월엔 원 구성한다 해서 7, 8월을 넘어가 버린다. 양당이 또 전당대회 하면 정기국회 이후 아무것도 못 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노조에 대해선 2009년 9월 회의 석상에서 "현대차 노조위원장 재투표하게 됐지만, 민노총이나 전교조, 공무원 노조 같은 문제도 하나의 중간 목표가 될 수 있다"며 노조 개입을 지시한다.
그러면서 "밑으로 내려가면 하나하나 회사 노조 이런 것도 우리가 관여하는 게 있지만은 그런 걸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조금만 잘못하면 그건 안 건드리는 것만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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